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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껍데기는 가라

투쟁 골몰하면 타협 설 자리 잃어 냉전시대 진영논리 오늘날 재연


대결과 투쟁의 한복판에서는 합리와 타협이 설 자리를 잃는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광화문의 민중 총궐기 시위를 둘러싼 갈등 국면이 이 짝이다. 보수계는 불법 폭력시위, 종북 좌파가 포함된 체제 전복 세력으로 규정하며 이들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고 있고 진보계는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적으로 몰고 있다며 추가 시위도 불사하겠다고 맞불을 놓고 있다.

"너는 어느 편이냐"라는 20세기 냉전 시대의 진영논리가 블랙홀처럼 화합을 위한 공론의 장을 빨아들이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담론은 확신과 증오 두 개의 감정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소통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단절된 것인가. 광화문 사태를 놓고 핏대를 세우는 저들이 진정 보수이고 진보인가. 달을 보라고 손가락을 들었더니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가리키며 서로 삿대질하는 사이비 보수와 사이비 진보는 아닐는지.

진정한 보수와 진보라면 자유와 평등, 인권 존중, 언론과 집회의 자유 등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를 존중하는 데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세계화·개방화의 거스를 수 없는 물결 속에서 이들 가치를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구현해내는가에 구성원 간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화·첨단화하는 복잡다단한 현대 세계에서 어느 쪽이건 교조적 이념 편향성으로 자기주장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갖고 미래를 같이 만들어간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대표적 예로 광화문 시위대의 '노동법 개악 중단' 요구를 보자. 정부가 추진하는 기간제 근로자 근무기간 연장, 파견업 범위 확대 등이 비정규직을 더욱 양산할 것이라고 반대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중소기업과 50~60대 퇴직자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필요한 측면도 있다. 민노총의 대기업 노조, 금융노조 등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800만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문턱을 낮추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시장 유연성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기자는 금융권 출입 시절 모 굴지 금융사 노조위원장이 퇴직도 하지 않고 국회의원 선거에 나갔다가 떨어지자 다시 노조로 복귀하는 비정상 행태를 목도하기도 했다. 노조를 정치에 악용하는 사례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핵심인 의료 민영화 문제도 교조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공적 의료보험의 근간을 유지하면서도 미래 일자리 창출의 촉발점이 될 수 있는 의료기관 민영화의 범위와 수준에 대해 전향적 자세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



자칭 보수라는 세력들도 소위 진보권이 사회 양극화를 개탄하거나 조금만 친북적 발언을 하면 종북이니 좌파니 하며 몰아대는 무지와 야만의 행태를 자제해야 한다. 집회의 자유를 차벽으로 봉쇄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났음에도 광화문 시위를 불법 시위로 규정하고 강경 진압에 나선 정부도 폭력 사태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는지 되새겨볼 일이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퇴진' 구호에 과민 반응하는 대신 정부의 진실이 중요하다면 그만큼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진실도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광화문 시위 사태로 불거진 정부의 '복면 금지법' 추진 논란도 소모적 논쟁에 다름 아니다. 선진국은 복면을 금지하는 나라도 있고 아닌 나라도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적 잣대가 아니다. 문제는 정부와 국민의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과서 국정화 방침도 자신만이 보는 세계가 정답의 세계라는 오만에서 나오지는 않았을까.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사회적 타협을 이루기 위해 서로의 주장을 경청하며 사회적 신뢰 자산을 쌓아가는 것이다. 해방 후 진정한 민주주의를 고민했던 현실 참여 시인 신동엽은 서로 쌈질하는 좌우익 이데올로기를 질타하며 치열하게 저항했다. 그는 당시의 소모적인 좌우 싸움에 경종을 울리며 '껍데기는 가라'고 절규했다. 광복 70년에도 이들 좌우익의 망령이 어른거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병관 문화레저부장 yh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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