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한 분야에서 재직기간 내내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전문직 공무원 제도가 도입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당시 미국 측 대표로 활동해 우리에도 익숙한 미국의 대표적인 통상전문가인 웬디 커틀러와 같은 인물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그는 28년간 통상 분야에서 일했으며 그중 10년 넘게 아시아권 국가와 통상협정을 담당했다.
인사혁신처는 20일 공직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한 분야에 평생 재직하는 전문직 공무원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전문직 공무원 인사규정 제정안을 21일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박제국 인사처 차장은 “국제통상과 재난·안전 등의 분야는 국민들이 필요로 하지만 공직사회의 순환전보로 전문성을 축적하기 어려웠다”면서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인사처는 내년 상반기까지 2~3개 부처의 기존 공무원을 대상으로 국가 운영상 전문성이 필요하지만 공무원이 기피하는 분야 가운데 부처별 특수성 등을 고려해 분야를 선정, 시범 실시할 계획이다. 한 번 전문분야를 정하면 평생 재직하는 것이 원칙이며 본인이 전보를 원하더라도 7년 이상 근속해야 한다.
인사처가 검토 중인 전문분야는 장기간의 협상 경험과 네트워킹이 필요한 국제통상과 국민의 생명에 직결되는 재난·안전, 질병관리 등이다.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세제나 환경보건,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한 연구개발이나 방위사업관리, 국정과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인사·조직 분야도 전문분야 선정 대상에 올라 있다.
인사처는 한 우물을 판 공직자의 승진 기회를 넓히기 위해 실·국 단위로 전문분야를 선정하고 사무관·서기관·과장·국장에 해당하는 3~5급을 전문관과 수석전문관 두 단계로 통합해 정원을 유연하게 관리하기로 했다. 과별로 빈자리가 생겨야 승진이 가능한 현 체제 대신 여러 과를 통합하고 장관이 정원을 늘리는 방식으로 승진 기회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그 밖에 일반 공무원보다 10% 보수를 높이고 전문분야와 연관된 해외 연수 기회를 우선 부여한다.
인사처 관계자는 “고시 출신 관료를 중심으로 여러 부서를 1~2년씩 거쳐 경력관리를 하는 관행이 오랫동안 이어져왔다”면서 “한미 FTA 협상 당시에도 커틀러는 20년 넘게 협상만 담당했지만 우리 측 담당 국·과장은 평균 재직 기간이 1년 3개월에 불과해 전문성에서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중앙행정부처의 고참 과장 이상이 되면 갈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전혀 다뤄보지 않은 분야의 산하기관 임원급으로 1~2년 파견 갔다 돌아오는 폐단 역시 전문직 공무원제를 도입해 한자리에서 오래 재직한다면 해소할 수 있다는 게 인사처의 판단이다. 다만 핵심 부서, 여러 부서를 거쳐야 고위직에 오를 수 있는 관행이 여전한 공직사회에서 얼마나 승진 기회가 보장될지 미지수라는 게 관료사회의 반응이다. 한자리에 오래 머물면 정책을 보는 시야가 좁아지고 ‘관피아(관료+마피아)’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세종=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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