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미래컨퍼런스 2016’에 모인 500여명의 참석자들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환상을 깨고 냉철하게 진단한 강연에 깊이 빠져들었다. 특히 주제발표에 나선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과 박병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장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사고의 변화이며 관건은 규제 완화’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참석자가 공감했다.
특히 규제 완화와 관련,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은 같은 원탁에 앉은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에게 금융회사가 비대면으로 고객의 실명확인을 할 때 행정자치부의 지문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발의해달라고 요청했다. 하 회장은 “행자부 지문 데이터를 가져다 쓰자는 것도 아니고 금융회사가 받은 지문이 맞는지 확인만 해달라는 건데도 규제 때문에 안 된다”면서 “오늘 강연의 핵심도 규제 아니냐”고 강조했다. 19대 국회에서 같은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가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 경험이 있는 김 의장도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김옥찬 KB금융지주 사장은 “네거티브(원칙적 허용, 예외적 금지) 규제로 바꿔야 한다는 이 이사장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면서 “금융지주는 지주 내의 계열사 간 고객정보를 상품 개발에만 사용할 수 있는데 직접 마케팅에 활용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책연구기관을 이끌고 있는 유병규 산업연구원장도 “빅데이터를 활용해 신산업 수요 분석을 하려고 삼성카드와 협업했는데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자유롭게 활용하기 어려웠다”면서 “오늘 주제가 매우 시의적절했다”고 말했다.
젊은 대학원생들도 빅데이터 활용을 막는 정부의 규제에 대한 우려가 컸다. 정의곤 KAIST 경영대학원생은 “컨퍼런스에서 정부가 규제를 풀고 공공 데이터를 제대로 개방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솔직히 우리 정부가 지금 와서 이걸 한다고 성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산업정책이 바뀌면서 산업의 미래를 막고 있다는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강연을 경청한 정부 관계자들도 생각을 바꾸려는 의지를 내보였다. 정양호 조달청장은 “정부가 4차 산업 과정을 넘기기 위해 본질적으로 해결할 일을 알았다”면서 “조달청이 미리 생산량을 예측해 발주하고 일일이 확인할 수 없던 중소기업 조달혜택 부정수급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홍욱 관세청장은 “박 센터장이 예를 든 인공지능(AI)과 드론, 클라우드 컴퓨팅에 주목했다”면서 “드론을 항만에 띄워 컨테이너 내에 실린 화물을 원격검사하는 방안을 알아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학배 해양수산부 차관도 “양식에 빅데이터를 활용해 효율성을 높이도록 정책을 구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을 직접 맞닥뜨리는 업계 참석자들의 반향은 더욱 컸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융합이라는 점을 알기 쉽게 설명해서 경영 구상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장석조 삼정KPMG 전무는 “회계산업에 4차 산업혁명은 위기이자 기회”라면서 “단기적으로는 회계사가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기업이 제시하지 않은 정보까지 분석해 감사 정확도가 획기적으로 올라가지만 시스템으로 정착되면 사람이 없어도 분석된다는 점이 회계업계의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법조계의 고민과 계획도 비슷했다. 양호승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는 “법률은 항상 현실을 뒤따라갔는데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앞으로 세워질 법리를 미리 예상하고 이를 토대로 자문하면 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임세원·구경우·조민규기자 why@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