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서 작성과정에서 불거진 환율문제는 예사로 넘길 사안이 아니다. 미국 측에서 환율조작을 하지 않는다는 원론적인 선언을 공동성명서에 담자고 했으나 한국의 반대로 포함은 안 됐다는 후문이다. 일단 포함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이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의 속내가 문제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환율을 조작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환율은 대달러 환율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과 수출 시장에서 전기전자·반도체·자동차·선박·철강·석유화학 등 대부분 주력제품이 치열한 경합관계에 있는 일본의 엔화에 대한 환율이다. 일본은 20년 장기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아베노믹스의 핵심적인 정책으로 엔화를 무자비하다고 할 정도로 절하시켜왔다. 지난 2012년 중반 달러당 70엔대 중반이던 엔·달러 환율이 최근에는 120엔대까지 55%나 절하됐다. 같은 기간 원·달러 환율은 오히려 절상돼 원화는 엔화에 대해 60% 절상됐다. 국제통화기금이 발표한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도 작성 기준연도인 2010년 대비 원화는 15% 정도 절상된 반면 엔화는 25% 정도 절하되고 있다.
그 결과 일본회사들은 달러 기준으로 할인해서 팔아도 돼 미국 시장에서 팔리는 달러 표시 도요타 캠리 가격이 현대 소나타 가격보다 싸게 나온 지가 벌써 오래되었다. 일본은 수출이 증가하면서 20년 장기불황에서 벗어나고 있는 반면 2011년까지 연평균 20% 내외를 기록해 오던 한국 수출 증가율은 2012년부터 주저앉기 시작해 올해 들어서는 10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거듭해 오면서 한국경제는 2%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다. 전형적인 일본의 근린궁핍화정책이다.
실정이 이러한데도 지난해 초 워싱턴 주요20개국 (G20) 재무장관 중앙은행총재 회담을 앞두고 미국 재무차관은 공개적으로 일본 정책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의 무자비한 근린궁핍화 정책에 대해 비난의 강도를 높이려고 벼르고 있던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국가들에 딴소리하지 말라는 경고나 다름없는 성명서였다. 그뿐만 아니다. 최근 중국이 위안화를 대폭 평가절하했을 때도 미국은 중국 환율제도가 보다 시장지향적으로 가고 있다고 오히려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하더니 최근 미중 정상회담에서 위안화 평가절하 문제는 거론도 되지 않아 위안화 추가 평가절하 길을 열어 주는 듯한 스탠스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지난 3년여 명목환율로 보나, 실질실효환율로 보나, 대엔화 환율로 보나 절상되고 있는 원화에 대해서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미국은 금리를 인상하게 될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양적 완화정책과 중국 위안화 추가평가절하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엔·달러 환율은 2~3년 내 140엔을 돌파할 것이라는 슈퍼달러 초엔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반면 한국은 외국인투자자금 유출을 우려해 오히려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 올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에도 불구하고 원화는 충분히 약세가 되지 못해 대엔화·대위안화에 대해서는 오히려 절상될 수 있다는 얘기다.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지속하고 있는 한국 수출은 초토화될 수도 있다.
설상가상 미국도 2012년 이후 무역 가중 달러지수 기준으로 26% 절상돼 2010~2011년만 하더라도 연평균 18.4% 증가하던 수출증가율이 2012년 4.2%, 2013년 1.9%, 1014년 2.5%로 낮아지고 2015년 1~8월 중에는 전년 동기간 대비 6.1% 감소로 추락하고 있다. 미국도 환율문제가 초미의 중요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일본과 중국은 절하를 용인하고 독일은 남유럽 때문에 유로화 절상을 요구하지 못하고 잘못하면 한국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제금융외교 강화 등 전력을 다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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