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4분기까지 기업 인수합병(M&A) 거래량이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이하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주도의 한계기업 구조조정 추진과 경기 악화로 현금 동원력이 풍부한 대기업집단이 잔뜩 움츠러든 탓이다.
블룸버그가 4일 발표한 국내 M&A 시장 리그 테이블(순위표)에 따르면 올해 3·4분기 누적 M&A 거래금액(인수 기준)은 418억9,000만달러(약 46조2,4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53% 감소했다. 총 1,055건의 M&A 거래가 이뤄졌으며 3·4분기 중에는 LG화학이 계열사인 LG생명과학을 합병한 거래가 13억400만달러(약 1조4,400억원)로 가장 규모가 컸다.
국내 M&A 시장의 흐름은 지난해 상반기에 10년 이래 가장 큰 거래 규모(635억달러)를 기록한 뒤 줄곧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블룸버그의 한 관계자는 “올해 전체 국내 M&A 시장 거래 규모는 약세로 마감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국내 M&A 시장의 침체는 정부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 작업과 관계가 깊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국내 대형 사모투자펀드(PEF·바이아웃 펀드) 운용사의 대표는 “대형 해운사의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조선사들마저 강력한 구조조정을 앞둔 분위기 속에서 큰 규모의 M&A 거래에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에는 소비재·유통 등 산업변화에 민감하지 않은 업종을 중심으로 대규모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SK네트웍스가 글랜우드 프라이빗에쿼티(PE), NH PE로부터 6,190억원에 경영권을 인수한 동양매직 거래가 대표적이다. 동양매직은 종합 생활가전 제조·임대(렌털)업체다.
또한 삼성·현대차·LG그룹 등 대표적인 대기업집단이 비주력 사업부·자산은 적극적으로 매각하면서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결정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확정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겹친 경기 불황이 지속하자 투자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 점도 M&A 시장 침체에 영향을 미쳤다.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달 프린터사업부를 물적 분할해 휴렛팩커드(HP)에 매각하고 해외 기업 보유 지분을 상당수 처분해 2조원이 넘는 현금을 손에 쥐었지만 아직 M&A 시장에서 조용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M&A 자문 시장에서는 유럽계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CS)가 53억4,000만달러(약 5조9,000억원) 규모의 거래를 성사시키며 시장점유율 10.71%로 1위를 차지했다. 미래에셋대우는 9.02%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해 2위에 올랐고 미국계 IB 모건스탠리가 7.6%로 뒤를 이었다.
/지민구기자 mingu@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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