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명품들이 ‘동양의 미(美)’에 꽂혔다. 최근들어 한복·기모노·일본식 정원 등에서 영감을 받은 명품 의류 및 잡화가 잇따라 출시되고 있는 것. 명품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동양의 감성을 신선하게 느낀 디자이너가 늘어난 영향으로, 글로벌 패션업계에서 동양적 아름다움이 활용되는 사례는 더욱 빠르게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최근 국내에서 첫선을 보인 이탈리아 명품 여성복 브랜드 안토넬리의 경우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에서 영감을 받은 ‘울 볼레로 재킷’ 롱·숏 제품을 2016년 가을겨울 시즌 전략 상품으로 내놨다. 소맷부리의 아래쪽을 꿰매지 않은 소매가 특징으로, 여유있는 핏과 오버사이즈 디자인을 통해 중성적이면서도 페미닌한 감성을 극대화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는 이번 시즌 18세기 일본 패브릭 벽지에 새겨진 일본 식물원에서 영감을 얻은 제품들을 선보였다. 각종 꽃과 식물, 새 등을 의류와 가방에 새겨 넣어 일본 정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다. 특히 이 작업에는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참여했는데, 책에서 발견한 일본 판화와 꽃이 시즌 컬렉션에 많은 영향을 줬다는 후문이다. 펜디 가방 및 의류는 소재면에서는 벨벳·퍼 등으로 따뜻한 느낌을 주면서도, 꽃과 식물 등으로 생동감 넘치는 디테일을 표현했다.
미국 명품 브랜드 마크제이콥스는 한복의 실루엣을 살린 롱스커트를 런웨이 상품으로 내놨다. 블랙 컬러로 시크한 매력을 뽐내면서도 한복의 부드러운 곡선미를 살려 이중적 감성의 조화를 강조했다. 한국 배우 박소담이 이 롱스커트에 꽃 무늬 상의를 걸쳐 시크한 느낌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봄여름 시즌에는 구찌·발렌티노·디올·생로랑 등이 동양화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 아이템을 대거 선보여 화제가 됐다. 호랑이·용·새·꽃 등을 화려한 자수로 새겨 넣은 재킷과 치마 등은 폭발적 인기를 끌었고, 세계적 모델 켄달 제너·케이트 모스, 패셔니스타 올리비아 팔레르모 등이 이를 입은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5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샤넬 패션쇼는 아예 한복으로 뒤덮였다. 당시 칼 라거펠트는 “색동 컬러, 한국의 비율 분할법 등 동양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한국만의 아름다움을 느꼈고, 한 지역의 패션을 세계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며 한복의 아름다움을 극찬했다. 그는 한복 저고리·바지·깃·고름 등을 두루 활용한 ‘샤넬 한복’을 선보임으로써 전 세계 패션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4월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컨데나스트 럭셔리 컨퍼런스’에서 샤넬 한복을 입어 눈길을 끌었다”며 “세계적 디자이너가 동양의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받는 경우가 늘고 있고, 이에 환호하는 패셔니스타가 증가하고 있어 동양적인 것이 글로벌 패션업계의 중심에 설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신희철기자 hcsh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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