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데스크칼럼]최순실게이트, 그리고 재계 3·4세에 주어진 숙제

김영기 산업부장

아버지 세대의 경영 결과물

'기업판 김영란법' 버금가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

'정경유착' 고리 끊어내야

오피면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이자 두산가 4세인 박서원 전무가 5년 전 자신의 수필집에 붙인 제목은 ‘생각하는 미친놈’이다. 1979년생인 그의 학창 시절 성적은 53명 중 50등. 공부에 담을 쌓고 살았지만, 아이디어만큼은 톡톡 튀었다. 성년이 돼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일을 찾는 순간 사람이 달라졌다”고 밝힌 것처럼 ‘꽂힌 일’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그의 능력은 결국 광고회사 오리콤에서 빛을 발했고 두산은 그룹 역점 사업인 면세점을 그에게 맡겼다.

서울경제신문이 지난 8월 20개 그룹의 3세 오너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껍데기를 깨고 싶은 욕망이 가슴에 가득함을 알 수 있다. 자기 회사의 혁신 점수를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나 IBM을 100으로 해 비교해달라는 요청에 대부분이 매긴 점수는 고작 ‘60~65점’이었다. 그들이 가장 바꾸고 싶은 부분 역시 ‘창의적 업무 문화 이식’이었다. 창업주나 아버지 세대로부터 내려온 수직적이고 관료적 기업 문화에 대한 답답함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대기업들이 다시 시련을 겪고 있는 지금, 오너 3세들의 마음을 오버랩해본다. 갤럭시노트7 사태로 가뜩이나 심란한 삼성은 대규모 압수수색에 황망함이 가득하고, 다른 기업들도 안절부절하고 있다. ‘정의로운(?) 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의 압박에 검찰은 대기업 책임자 누군가에 포승줄을 옭아매려 벼를 것이고, 일부 총수는 검찰청 포토라인에 설지 모른다. 그래야 여론의 직성이 풀리고 대마(大馬)에 마땅한 혐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검사들도 체면치레를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기업들은 이번에 정치 게이트의 제단 위에 던져진 제물이 됐다.

어떤 이는 이런 모습에 ‘기업이 봉인가’라고 외치고 또 다른 이는 ‘기업은 정말 100% 피해자인가’라고 비판한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분석들은 누군가의 속을 달래주려는 ‘말의 성찬’ 뿐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진정 설정해야 할 기준점은 ‘미래’다. 모든 기업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최순실 게이트는 굳이 따진다면 아버지 세대의 경영 결과물이다. 일부 3세 오너들이 도마 위에 올라 있지만 그들이 미르 재단이네 하는 것에 얼마나 관심이 있었을지는 회의적이다.



결국 기업들에 최순실 게이트는 정치와 결별하는 ‘마지막 유물’이어야 한다.

최순실과 그의 주변 인물들은 아버지들이 단절해내지 못한 정치인들과의 지저분한 줄기를 이용했다. 행사 때마다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에게 굽실거리는 아버지(총수)들의 사진에 그들은 한껏 비웃으며 먹잇감을 찾았다. 그것도 상처 난 곳들만 골라서 파고들었다. 수사를 받거나, 사면 대상이거나, 심지어 인수합병(M&A) 심사가 필요한 곳들까지 찾아내 손을 벌리는 수완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그들은 이렇게 아버지 세대가 안고 있는 정경유착의 트라우마를 교묘하게 이용했다.

젊은 3·4세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거대한 조직을 젊고 날렵한 문화로 바꾸기 위해 시도하는 ‘컬처 혁신 프로그램’을 정말로 성공하고 싶다면 본인 스스로 정경유착과의 단절을 과감하게 선언해야 한다. 등기이사가 된 것은 이런 측면에서 소중한 기회다. 이사회 기능을 대폭 강화하고 정치가 손을 뻗치지 못하도록 ‘기업판 김영란법’에 버금갈 정도의 강력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다른 3·4세대 역시 마찬가지다.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을 외치면서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것은 비겁하다. 기업의 창의적 문화에서 정치경영은 가장 위험한 독(毒)이다. 반기업 정서와 지긋지긋한 규제의 사슬이 야박하고 힘겹더라도, 마지막까지 뚫어내야 한다. 그것이 정공법이다. 조직원들을 향해 그토록 ‘혁신’을 외치면서 장막 뒤에서 정경유착이 품어내는 달콤함에 또다시 유혹을 느끼는 순간, 우리의 미래 역시 참담해질 수밖에 없다.

young@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