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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도의 톡톡 생활과학]한국인 유전자 지도, 질병 치료의 신기원 연다

2007년 1월 맥월드에서 신형 아이폰을 발표하는 스티브 잡스. 그는 2011년 10월 사망 전 DNA 분석을 통해 췌장암 치료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실패했다.




IT 혁명으로 세상을 바꿔 놓은 스티브 잡스. 2011년 10월 췌장암으로 사망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혁신적인 암 치료를 시도한다. 자신의 췌장암 세포의 유전 정보를 분석해 암의 치료법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이른바 개인 유전체 서열분석(Whole Genome Sequencing) 방식이다. 잡스는 이를 위해 10만 달러의 돈을 지불했다. 하지만 이 치료는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잡스의 암을 유발한 유전 변이를 발견했지만 여기에 적합한 치료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DNA 분석을 통해 암 치료 방법이 크게 발전할 것으로 확신했다.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암 유전자 분석으로 암을 치료한 최초의 사람이 되거나, 혹은 이런 방법을 썼지만 죽은 거의 마지막 사람 중 한 명이 될 것이다.”

잡스의 유전 정보 상당수를 분석한 곳은 미국 보스턴의 브로드 연구소였다. MIT와 하버드 대가 공동으로 설립한 이 연구소는 유전체학 분야 세계 최고 연구소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를 주도했던 곳이다.

2000년 6월 인간게놈프로젝트 초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다국적팀 대 표인 프랜시스 콜린스(왼쪽)박사와 셀레라지노믹스의 회장 겸 연구 책임자인 크레이그 벤터(오른쪽)가 웃고 있다.


게놈(genome)이란 용어는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의 합성어로 생물 세포에 담긴 유전정보 전체를 말한다. 이 염기서열을 모두 밝혀내고자 1990년 공식 출범한 것이 인간 게놈 프로젝트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등의 발의로 영국과 독일, 프랑스, 일본, 중국 등 6개국 과학자들이 참여해 공동 연구가 시작됐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러시아 등 12개국과 미국 생명공학회사 셀레라 지노믹스 등이 가세했다. 생명 공학 사상 최대의 프로젝트였던 인간 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된 건 2003년 4월 14일이다. 인간의 몸 DNA 사슬의 30억7,000만 쌍 염기 서열 중 99.99%가 규명됐다. 인간 유전자는 2만5.000개~3만2,000개로 밝혀졌다. 당시 미국 국립인간게놈연구소(NHGRI)는 성명을 통해 “달착륙에 견줄만한 야심찬 작업”이라고 밝혔다.

인간의 몸은 약 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돼 있다. 세포의 핵에는 성 염색체를 포함해 23쌍의 염색체가 있다. 염색체는 유전 물질인 디옥시리보핵산(DNA) 덩어리다. 그 안에는 아데닌(A), 구아닌(G), 티민(T), 시토신(C) 등 네 종류 염기로 구성된 사슬이 이중나선 구조로 얽혀있다. 사람의 경우 세포마다 30억 7,000만 쌍의 염기가 존재하고 있다. 게놈 프로젝트는 바로 이 염기가 어떤 순서로 배열돼 있는가를 밝혀내는 작업이다. DNA의 염기 배열에 따라 궁극적으로 어떤 단백질이 만들어지는지가 결정된다. DNA의 염기 배열 정보는 DNA와 구조가 비슷한 또 다른 유전물질 리보핵산(RNA)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이 RNA의 염기 3개에 맞춰 아미노산 하나가 만들어진다. 염기 3개의 성분이 무엇인지 알면 어떤 아미노산 1개가 만들어지는가를 알 수 있다. 아미노산은 인체에서 다양한 생리현상을 주관하는 단백질의 기본 단위다.

지금까지는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의 백인 게놈 지도가 인간 표준 게놈지도였으나 한국인과 같은 아시아인과 다른 부분이 많았다. 미국인은 갖고 있지만 한국인에겐 없는 염색체 영역을 확인할 수 없어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 후보를 정확하게 찾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동안 인간게놈지도는 주로 한 사람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지난 2003년 완성된 ‘인간표준게놈지도’는 여러 사람의 유전자를 분석했지만 85% 이상이 백인 1명의 유전 정보로 구성돼 있다. 2009년 중국이 중국인(황인)과 흑인의 게놈 지도를 공개했지만 각각 1명을 대상으로 만든 정보였다.

한국인 표준 게놈 지도를 만든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연구원(UNIST) 교수. 한국인이 많이 걸리는 암이나 희귀 질환의 원인을 밝히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한국인의 표준 게놈지도가 나왔다.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장 연구팀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국가참조표준센터와 공동으로 한국인 표준 게놈지도 ‘코레프(KOREF)’를 완성했다고 지난달 24일 밝혔다. 다수의 한국인이 공통으로 가진 유전 정보를 알아내 이를 표준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소장팀은 서울, 대전, 울산, 강원 등 전국 각지에 사는 한국인(일반인) 41명의 게놈을 기증받아 30억7,000만 개의 염기서열을 해독했다. 이들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한국인 고유의 유전적 특징을 모두 정리했다. 박 교수는 “한국인은 오랜 기간 단일 민족이었기 때문에 미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DNA에 공통 부분이 많다”며 “이번에 만든 게놈 지도는 한국인이 더 많이 걸리는 암이나 희귀 질환의 원인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에는 서정선 서울대 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장팀과 국내 생명공학기업 ‘마크로젠’의 연구진이 한국인의 게놈 지도를 최대 정밀도로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30대 한국인 남성의 DNA를 세계 최고 정밀도로 해독한 ‘한국인 표준 게놈지도’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기존 게놈 지도에는 해독이 불가능했던 190개 영역이 있었는데 이번 게놈 지도에서는 그중 105개가 완벽하게 해독됐다. 암 억제 유전자로 알려진 유전자와, 피부색 등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유전자 등 다양한 유전자에서 한국인만의 특성을 찾아냈다. 네이처는 이번 결과에 대해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 인종 고유의 유전정보를 확인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HGP의 원래 목적은 유전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HGP 결과, 많은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의 염색체 상에서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됐다. 인간의 염기 서열 정보를 담은 게놈 지도는 난치병 정복에 도전하는 세계 각국의 병원, 제약회사, 대학, 연구소들에 유용한 정보가 됐다. 그러나 게놈 지도가 완성됐다고 해서 인간의 불로장생이 당장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각 유전자의 기능을 밝혀내는 후속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런 기능 분석 작업은 지금까지 해 온 염기 서열 분석보다 훨씬 많은 연구 예산과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인간은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제2의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이중 나선구조로 이뤄진 DNA. 하버드대 연구진이 인간 DNA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제 2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5월 하버드의대는 세계 각지의 과학자와 기업인·법률가 등 150명을 초청, 제2 인간 게놈프로젝트에 관한 비밀회의를 열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하버드대 연구진의 주도로 이뤄지는 2차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인간 DNA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것이다.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를 이루는 4개의 염기를 인공적으로 합성해 인간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를 만들겠다는 게 이들 과학자의 목표다. 쉽게 말해 생물학적 부모가 없어도 복제 인간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과학자들은 “장기에 문제가 발생한 환자에게 이식할 수 있는 장기를 DNA 합성으로 실험실에서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며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30억 7,000만 쌍에 달하는 DNA 염기를 어떻게 합성해야 원하는 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는 현재 과학 수준으로는 알기 어렵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2차 게놈 프로젝트를 위해 최종 30억 달러의 연구비 조성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에서는 생명 윤리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유전자를 이용한 질병 치료야 그렇다 쳐도 유전자 조작으로 신의 영역 까지 침범하는 게 과연 합당하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과학자들은 불거질 수 있는 윤리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 차분히 풀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병도기자 d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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