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제가 도입된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재계에서는 ‘장수 사외이사’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특히 정유·화학·에너지 업계에서는 10년 이상의 ‘직업이 사외이사’인 경우가 두드러져 사외이사제의 취지를 해친다는 지적이 높다.
1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효성(004800)은 17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김상희 전 법무부 차관을 포함한 사외이사 5명에 대한 재선임 안건을 상정했다. 김 전 차관은 지난 2007년 선임된 후 올해로 11년째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다. 주총에서 선임안이 가결되면 적어도 2019년까지 이사직이 유지돼 13년 동안 효성 사외이사로 일할 수 있다. 한민구 서울대 명예교수 역시 이번 주총에서 재선임 여부를 가린다. 한 교수는 2009년부터 효성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OCI(010060)의 사외이사인 김용환 변호사와 태광산업(003240) 사외이사인 남익현 서울대 교수는 2007년부터 사외이사직을 유지하며 올해로 10년째를 넘기고 있다. 또 한승헌 전 감사원장은 2001년부터 E1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으며 천진환 인천대 석좌교수는 2003년 E1의 사외이사로 선임된 후 14년째 유지 중이다. 최영두 대성산업 상임감사는 2003년부터 서울도시가스 사외이사를, 윤기종 단국대 교수는 2005년부터 코스모화학(005420) 사외이사를 맡고 있으며 올해 교체될 예정인 서석호 김앤장 변호사도 2005년부터 SKC(011790) 사외이사를 맡았다.
문제는 정유·화학·에너지업계의 장수 사외이사가 다른 제조업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 상장 계열사 7곳의 사외이사 중 10년 이상 사외이사를 맡은 경우는 단 한 건에 불과하며 현대차그룹 8개 상장 계열사 중에서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는 업계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소비재가 아닌 중간재 기업인데다 급격한 변화를 겪지 않는 편이라 외부 노출이 적고 이 때문에 사외이사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것. 또 석유화학 등 전문적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해 사외이사 역시 임기가 길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휴대폰이나 자동차의 제품 주기는 3~5년이지만 화학제품은 10~2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며 “산업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가 필요하기도 해 상대적으로 사외이사의 임기가 긴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외이사제 도입 취지를 고려한다면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한 회사에서 장기간 사외이사로 활동할 경우 대주주와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이미 효성의 김상희 전 차관과 OCI의 김용환 변호사의 사외이사 선임안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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