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청와대를 떠난 지 18일 만에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30일 서울중앙지법에 나타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전보다 야위어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은 12일 밤과 21일 검찰 조사 때처럼 남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오전10시20분께 차에서 내려 법정까지 55걸음을 걷는 동안 표정은 굳어 있었다. 한 달 사이 한 나라의 대통령에서 수의를 입은 피고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그를 엄습한 듯했다.
박 전 대통령은 오전10시30분부터 30평 남짓한 서울중앙지법 서관 321호에서 강부영 영장전담판사의 심리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았고 오후7시29분 법원을 빠져나갔다. 취재진은 박 전 대통령에게 ‘현재 심경은 어떤지’ ‘국민에게 무엇이 송구한지’ ‘뇌물 혐의는 인정하는지’‘인양되는 세월호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등을 물었지만 그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조사받았던 서울중앙지검 10층 1002호에서 영장 발부 여부를 기다렸다.
박 전 대통령은 유영하·채명성 변호사를 대동하고 점심도 김밥으로 간단히 때우며 오후7시11분까지 약 8시간40분 동안 이원석·한웅재 검사 등 검찰 측 6명과 법리 다툼을 벌였다. 이는 역대 영장심사 최장 기록으로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경우 영장심사를 받는 데 2시간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7시간30분가량 걸렸다.
박 전 대통령이 침묵으로 일관하며 법정을 출입하는 동안 서울 삼성동 자택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주변은 지지자들의 시위로 아수라장이었다. 자택 인근에서는 지지자 200여명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탄핵 무효’ ‘사기 탄핵’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한 여성 지지자는 “광우병 때 속고, 세월호 때 또 속고, 최순실에 또 속는 거냐”며 오열했다. 일부 지지자가 법원으로 떠나는 박 전 대통령의 차를 막으려고 나서면서 경찰 저지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삼성동에서 출발하기 전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부부가 자택을 찾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박 회장을 만난 것은 2013년 2월25일 제18대 대통령 취임식 이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법원에서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때처럼 법원 간부가 마중을 나오지는 않았다. 앞서 박 전 대통령 측은 이날 하루 법원 전체를 통제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법원은 하루에도 수만명의 민원인이 찾는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대신 박 전 대통령이 조사받는 3층 전체를 통제했고 법원 주위로 2,000명이 넘는 경찰 인력이 배치됐다. 3층으로 향하는 통로는 청와대 경호팀과 법원 직원들이 막고 제한된 소수의 인원만 통과시켰다.
뇌물을 포함한 박 전 대통령의 혐의가 13개에 이르고 검찰이 제출한 수사기록만도 12만여쪽에 달해 영장 발부 여부는 31일 새벽에 결정됐다. 박 전 대통령 측이 혐의를 전면 부인했고 법리 다툼도 한층 치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종혁·변수연·김우보기자 2juzs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