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전면 도입 정책이 큰 사회적 비용과 추가적인 혼란만 예고한 채 전면 재수정 수순에 들어갔다. 최근 법원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성과연봉제 도입은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온 탓이다. 더욱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책 추진 당시 ‘위법 소지가 크다’는 법률 자문과 부처 의견까지 무시하고 성과연봉제를 강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9일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법원 판결과 새 정부 기조에 따라 공공기관 임금체계와 경영평가 기준을 수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책 수정은 크게 두 갈래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노조의 동의 없이 성과연봉제가 도입된 기관은 새로운 노사 협의를 거쳐 임금체계를 개편한다. 현재 기재부는 48곳, 공공기관 노조는 54곳 정도가 노조 동의 없는 성과연봉제 도입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성과연봉제 도입을 사실상 강제했던 공공기관 경영평가 기준도 바뀐다. 현재 경영평가 편람에는 성과연봉제 관련 항목은 100점 만점에 3점이 책정돼 있는데 이를 축소하거나 폐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 추진에 떠밀려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던 공공기관은 노사 모두 극심한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임금체계 개편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작업인데 불과 몇 년 만에 뒤집기를 반복하는 처지에 놓인 상황이다.
성과연봉제의 실패는 정책 추진 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 로펌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추진 당시 노동자에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 동의가 없으면 위법 소지가 크다는 취지로 정부에 법률자문을 해줬다”며 “하지만 정부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정부에 제출된 법률자문은 공공기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노조 동의가 없는 임금체계 개편은 근로기준법 위반에 해당할 우려가 크다 △법원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는 이유로 위법하다고 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대법원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하는 데 엄격한 입장이어서 종합적으로는 위법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었다. 정부는 이 가운데 ‘사회통념상 합리성 논리로 법에 저촉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만 받아들여 성과연봉제 확대를 추진한 것이다.
이와 함께 정책 추진 과정에서는 부처 의견까지 묵살됐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법률자문 내용대로 향후 법적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청와대에 보고했으나 워낙 정책 강행 의지가 강해 어쩔 수 없었다”고 전했다. 결국 성과연봉제 정책 실패는 객관적인 사실과 의견을 무시하고 제도를 강행한 박 전 대통령의 일방통행이 빚은 예정된 파국이었던 셈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근속 연도에 따라 자동적으로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이 불합리한 점이 있지만 대안으로는 성과연봉제뿐 아니라 직무급, 역할급, 여러 임금체계의 혼합 등 다양한 것들이 있다”며 “노사의 충분한 논의와 각 기관의 특성에 따라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했는데 이런 것들을 모두 무시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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