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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적폐’ 없애라]지원 눈치채고 “납품가 낮춰라”...대기업만 배불린 중기자금

제조업·광업 중기, 원청 ‘빨대효과’로 생산성 5% 손해

뚜렷한 원가 없는 정보서비스업은 피해액 가늠도 안돼





지난해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사업을 따낸 A 제조기업은 최근 원청 대기업으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납품 단가를 대거 낮추라는 통보가 내려왔다. A 기업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의 요청으로 우리 원가 체계 등 자금 사정을 대기업이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됐는데 아무래도 사정이 나아진 것을 보고 정부 지원을 눈치채 결국 단가를 낮추라고 통보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지원을 받아도 대기업이 이에 맞춰 단가를 낮추라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정부가 중소기업을 지원하지만 결국 원청 대기업이 빨아올리는 ‘빨대효과’도 중기 지원 예산은 나날이 늘어나는데 큰 효과를 못 보는 주된 이유다. 실제 우석진 명지대 교수 등의 실증분석 결과에 따르면 제조업과 광업에 속한 중기는 빨대효과로 5.17%의 생산성을 손해 본 것(2008년 대비 2011년 기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프트웨어 등 원가를 책정하기 힘든 업종의 빨대효과가 심했다. 제조업과 같은 뚜렷한 원가가 없는 정보서비스산업은 대기업이 단가를 후려치면 이에 맞출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기 스스로도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다. 장우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 지원을 받기 전에는 괜찮았던 중기들이 시간이 갈수록 노력을 게을리하는 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빨대효과에서 보듯 정부 지원을 대기업이 가로채고 산업 생태계 상 아무리 노력해도 대기업이 버티고 있어 성장에 한계가 있자 꼬박꼬박 정부 지원액만 타 먹으며 현실에 안주한다는 것이다. 실제 장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5년까지 정책자금을 받은 중기는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총자산영업이익률이 1.1%포인트 낮았다.



정부 지원 체계도 지원금만 관성적으로 타 먹는 기업들을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 백훈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체 중소기업 지원 사업 중 10년 이상 된 프로그램이 절반 이상”이라고 분석했다. 이들 사업은 유망한 중기에 흘러가기보다 기존에 지원 받던 기업에 계속 지급될 가능성이 높다. 백 연구위원은 “2015년부터 운영되는 ‘중소기업 지원사업 통합관리시스템’으로 중장기 성과 분석을 할 수 있음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비효율을 낳고 있다”고 꼬집었다. 2000년대 후반에 새롭게 도입된 사업은 일몰제도 적용을 받지만 그 이전에 만들어진 것은 계속 제도가 존재하며 받던 기업들에 지원해주는 경향이 있는데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근본적으로 정부의 중기 지원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금까지의 중기 지원은 중기가 망했을 때의 후폭풍이 두려워 연명시켜주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는데 유망한 중기를 정밀하게 골라 집중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위원은 “중기가 망하면 잠깐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이들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다른 중기에 흘러들어가 새로운 자양분이 된다”며 “중기 정책의 목표를 중기 하나하나의 생존으로 보지 말고 큰 시야에서 우리 경제 전체의 발전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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