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원전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에서 기업이 아낀 전력만큼 보상해주는 수요자원(DR) 거래시장을 현재보다 두 배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현재 확보한 DR가 4GW가량인 점을 감안할 때 장기적으로 7~8GW의 전력수요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원전과 석탄발전소를 더 짓지 않고도 전력예비율을 높일 수 있어 탈원전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다. 다만 에너지 공급 확대가 아닌 수요 감소에 초점이 맞춰져 예상치 못하게 수요가 급증할 때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 한계다. 과하게 DR를 확보할 경우 오히려 전력정책의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7일 “탈원전과 친원전 양쪽에서 여러 쟁점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모두 인정하는 부분은 ‘수요관리’와 ‘신재생 확대’ 두 가지 측면”이라며 “발전소를 더 짓지 않고 전력수요를 분산시킬 수 있는 DR 시장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는 2019년 전국 가정에 (전력 사용량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양방향원격검침시스템(AMI)이 보급되면 국민 DR도 시행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DR 시장은 기업이 감축 노력을 통해 전년 대비 전기 사용량을 줄이면 늘어나는 발전비용을 정부에서 보조금을 통해 보전해주는 제도다. ‘전기를 아낀다’는 의미로 전력단위인 ‘메가와트(Megawatt)’와 ‘네거티브(Negative)’를 합친 ‘네가와트(NegaWatt)’시장이으로 불린다. 지난 2014년 11월 네가와트 시장이 처음 개설돼 1.4GW였던 등록량은 점점 늘면서 지난해 1월 2.8GW, 최근에는 4.4GW 수준이 됐다. 원전 1기의 발전용량이 1.4GW 수준인 점을 고려할 때 원전 3기를 더 짓지 않아도 되는 효과가 있다.
정부는 네가와트 시장을 확보하면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원전과 화전을 추가로 짓지 않아도 되는데다 전력수급 우려를 잠재울 수 있어 복잡하게 꼬인 탈원전 논란을 원만하게 풀 수 있는 ‘핵심 키)’로 보고 있다. 가정에 이 제도가 도입되면 전력 사용량을 줄인 가정에 인센티브를 주는 효과가 있어 자발적인 전력량 사용 감축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5년 기준 미국의 네가와트는 전체 발전량의 18%를 차지해 원전(16%)보다 비중이 높을 정도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히 있다. DR 시장만 믿고 발전설비를 충분히 확보하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에너지 수요량이 폭증할 경우 감당할 수 없다. DR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전력수요를 줄이는 시설 투자 등을 해서 기업체가 과거보다 전력사용량을 더 줄일 수 있다는 추정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계획 등이 어긋날 경우 수요는 단기에 몰릴 수 있다. DR 시장이 충분한 전력설비 확보를 병행해야 하는 이유다.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 지식기반기술에너지대학원 교수는 “발전소 건설비용과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공장 조업을 중단해야 하거나 기업이 자가발전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장기간 진행하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DR 시장을 늘리겠다며 전력 수요가 늘어날 때마다 기업에 급전을 요구할 경우 기업들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정부는 올여름 들어 기업들에 7월 두 차례와 이날까지 세 차례에 일정 시간 “전력을 감축하라”는 급전을 전했는데 이를 두고 기업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적절한 보상을 해줘도 공장을 가동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세종=강광우·김상훈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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