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가위를 얼마 남기지 않고 30대 여성이 서울 모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성남에서 서울로 병원을 옮긴 지 3~4개월 만이었다. 가족은 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자매에게도 연락이 됐다. 여동생은 장례는 어떻게 치르는지, 발인은 언제 하는지 묻는 전화까지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누구도 딸과 언니의 주검을 찾아가려 하지 않았다. 700만~800만원에 달하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여성의 시신은 무연고사망자로 처리돼 화장됐고 이후 가족이 나타나 유골을 찾아갔다.
서울경제신문이 전국 238개 시군구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올 7월까지 누적 무연고사망자 4,150명 중 신원 미상인 경우는 10%를 조금 넘는 421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90%인 3,729명은 신원이 확인됐지만 가족이 시신 인수를 포기하거나 아예 연고가 없는 사망자들이었다. 가족이 없는 경우는 고아나 외국인·탈북민 정도다.
이 때문에 무연고사망자라고 하더라도 거의 가족이 있는 주검이라고 봐야 한다는 게 지자체와 병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울은 좀 더 극적이다. 서울의 최근 4년간 누적 신원 확인 무연고사망자는 1,127명. 반면 신원 미상자는 43명에 불과하다. 100명 중 97명은 가족이 있지만 장례를 치를 경제적 여유가 없거나 서로 남처럼 지내온 탓에 시신 인도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지역별로는 쪽방·고시원·여인숙 등 취약 주거시설이 밀집한 곳이 무연고사망 위험 지역으로 분석됐다. 최근 4년간 서울 중구와 영등포(163명)의 누적 무연고사망 건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았던 이유다. 지방에서는 공단이 밀집해 있는 창원이 110건으로 다른 지역을 압도했다.
주목할 점은 올 들어 무연고사망자 증가세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올 7월까지 전국 무연고사망자 수는 886명. 벌써 2014년 전체(911명)에 바짝 다가섰고 지난해(1,247명)의 70% 수준을 넘어섰다. 올해 무연고사망자가 1,500명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를 대신 치러주는 시민단체 ‘나눔과나눔’의 박진욱 사무국장은 “‘무연사(無緣死)’는 ‘무연생(無緣生)’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사회와 단절된 이들을 방치했을 경우 어떤 비극으로 나타나는지 무연고사망자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다. 1인 가구 증가의 결과물이 무연사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비의도적으로 끊긴 관계의 결과가 1인 가구와 무연사의 증가로 나타났다는 의미다. 박창제 경북대 사회학부 교수는 “고독사 또는 무연고사망자의 증가는 ‘나 홀로 삶’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로부터의 절연 또는 고립에 따른 결과물”이라며 “지역사회의 복원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송영규 논설위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