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 이상 남성 5명 가운데 1명(20.5%), 65세 이상은 3명 중 1명(31.5%)이 앓는 것으로 추정되는 질환. 3층 정도만 걸어서 올라가도 호흡곤란이 느껴지고 중증으로 진행하면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숨이 차 병원에서 산소 공급을 받아야 하는 질환. 병명이 어렵고 여전히 생소한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얘기다.
우리나라에는 약 350만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지난 2015년 이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23만여명으로 7%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의 인지도 조사에서 흡연자들조차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라는 사람이 많고 질병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잘 몰라 환자 3명 중 1명이 계속 담배를 피우는 게 현실이다.
오랜 기간 담배를 피운 중년 이상 성인 중에는 기침·가래 증상에 무심하다 감기에 걸리거나 운동할 때 호흡곤란을 느끼고 나서야 의사를 찾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심해지면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도 있는 무서운 병이다.
인구 10만명당 사망원인 추이 (단위: 명, %)
순위 | 2006년 | 2016년 | ||||
사망원인 | 사망률 | 사망원인 | 사망자수 | 구성비 | 사망률 | |
1 | 암 | 134.0 | 암 | 78,194 | 27.8 | 153.0 |
2 | 뇌혈관 질환 | 61.3 | 심장 질환 | 29,735 | 10.6 | 58.2 |
3 | 심장 질환 | 41.1 | 뇌혈관 질환 | 23,415 | 8.3 | 45.8 |
4 | 당뇨병 | 23.7 | 폐렴 | 16,476 | 5.9 | 32.2 |
5 | 자살 | 21.8 | 자살 | 13,092 | 4.7 | 25.6 |
6 | 운수 사고 | 15.9 | 당뇨병 | 9,807 | 3.5 | 19.2 |
7 | 간 질환 | 15.5 | 만성 하기도 질환 | 6,992 | 2.5 | 13.7 |
8 | 만성 하기도 질환 | 14.4 | 간 질환 | 6,798 | 2.4 | 13.3 |
9 | 고혈압성 질환 | 9.4 | 고혈압성 질환 | 5,416 | 1.9 | 10.6 |
10 | 폐렴 | 9.3 | 운수 사고 | 5,150 | 1.8 | 10.1 |
지난해 한국인 10대 사망원인 중 4위인 폐렴(인구 10만명당 32.2명), 7위인 만성하기도질환(13.7명) 사망자 중 상당수도 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10년 사이 10대 사망원인 중 뇌혈관질환(2→3위), 당뇨병(4→6위) 등은 순위가 떨어졌지만 폐렴(10→4위), 만성하기도질환(8→7위)은 순위가 올랐다.
만성폐쇄성폐질환은 담배 연기 같은 유해가스 등을 장기간 흡입해 기관지와 폐에 만성 염증이 생겨 발생한다. 가장 주요한 발병 원인은 흡연 또는 간접흡연이다. 기도가 좁아지고 폐 기능이 저하돼 만성적인 기침·가래·호흡곤란이 일어난다. 특히 숨을 내쉴 때 숨이 차게 된다. 폐기종, 만성 기관지염 등이 이에 속한다.
만성폐쇄성폐질환 건강보험 진료인원(2015년) (단위:명,%)
구분 | 진료인원 | 구성비율 | 남자 | 여자 |
계 | 232,156 | 100.0 | 162,717 | 69,439 |
20대 이하 | 4,588 | 2.0 | 2,542 | 2,046 |
30대 | 3,895 | 1.7 | 2,304 | 1,591 |
40대 | 9,126 | 3.9 | 5,856 | 3,270 |
50대 | 28,189 | 12.1 | 19,106 | 9,083 |
60대 | 58,130 | 25.0 | 43,667 | 14,463 |
70대 | 81,307 | 35.0 | 59,511 | 21,796 |
80세 이상 | 46,921 | 20.2 | 29,731 | 17,190 |
2015년 건강보험 진료인원 23만여명 중 60대 이상이 80%(19만명)를 차지했다. 전체 진료인원의 70%(16만명)가 남성으로 여성(7만명)의 2.3배였다. 이 질환으로 기도가 좁아지면 폐로 들어간 공기가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아 1초간 뿜어낼 수 있는 공기의 양(FEV1)이 줄어든다. 미국 연구에서 초기 COPD 환자의 FEV1은 정상인의 78%였지만 10년 뒤 흡연 그룹은 66%로 떨어졌다. 반면 금연 그룹은 77%로 10년 전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따라서 조기에 진단해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빠른 ‘흡입 기관지확장제’로 꾸준히 치료하고 흡연자라면 담배를 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와 국내 의료계의 대응은 후진적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5년 5월부터 1년간 연간 10명 이상의 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를 진료한 6,700여 의료기관을 조사해보니 흡입 기관지확장제 처방 비율이 의원 40%, 병원 60%, 종합병원 80%,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 93%에 그쳤다. 진단과 경과관찰에 필수인 폐기능 검사 시행률도 의원 42%, 병원 52%, 종합병원 68%, 상급종합병원 82%에 불과했다.
폐 기능은 한 번 망가지면 회복할 수 없어 빨리 발견해 기능이 더 떨어지지 않도록 평생 관리하는 것이 최선인데 중증환자조차 흡입 기관지확장제 1년 지속 치료율이 35%에 불과한 것도 문제다.
이진국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만성폐쇄성폐질환 치료를 위해서는 흡입 기관지확장제를 우선 처방하는 게 국제 기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효과가 떨어지고 신장 독성 등 부작용이 많은 먹는 기관지확장제가 건강보험에서 퇴출되지 않은데다 먹는 약만 처방하는 경우가 더 많은 실정이어서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질환과 흡입제 사용법 교육에 5~10분을 투자해야 하는데 건강보험에서 이에 대해 보상을 해주지 않고 있다는 점도 먹는 약 처방률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는 교육상담수가 신설, 국민건강검진 생애전환기(만 40·66세) 검진항목에 폐기능 검사 추가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 교수는 또 “당뇨병·고혈압 진단을 위해 혈당·혈압을 측정하듯이 만성폐쇄성폐질환 진단을 위해서는 반드시 폐기능 검사를 해야 하는데 국내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검사장비 가격이 50만~300만원 수준까지 떨어져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수십만원을 본인이 직접 부담해야 하는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와 달리 폐기능 검사는 1만~2만원만 내면 된다.
3층 정도 걸어서 올라가는데 호흡곤란이 느껴지면 만성폐쇄성폐질환 가능성이 크므로 검사받을 필요가 있다. 유광하 건국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호흡기 증상이 있거나 하루에 한 갑씩 10년간 담배를 피운 경험이 있는 40세 이상은 폐기능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며 “급성 악화의 주요 원인인 호흡기 감염이 생기지 않도록 손 씻기 등 개인위생 수칙을 준수하고 독감·폐렴구균 백신을 맞으라”고 조언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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