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동구 산업단지 내 주조 업체의 A 대표는 최근 울며 겨자 먹기로 10%대 대출금리로 생산자금 20억원을 조달했다. 일본의 중견기업과 납품 수출계약을 체결해 원자재 구입 비용이 급했기 때문이다.
그는 “매출액 등 재무제표 위주의 대출 관행으로 인해 우리 같은 영세 소상공인들은 기존에도 저금리 대출이 어려웠지만 최근의 금리 인상 분위기로 금융권에서 신규 대출을 기피한다”며 “10%대의 고금리라도 일단 대출을 받아 납품하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에 고마워해야 하는 처지”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시중 금리 인상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는 중소기업 현장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지난해 6월 이후 계속된 저금리 환경에 은행권에서 돈을 빌려 사업을 확장했거나 설비투자를 계획했던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최근 부쩍 높아진 금리에 한숨을 내쉬고 있다. 리스크 관리에 나서기 시작한 은행들은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 조건으로 원금 일부 상환을 요구하거나 차환 대출 시 금리를 2~3%포인트씩 높여 부르면서 돈줄을 죄는 상황이다.
3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중소기업들의 대출잔액이 큰 폭으로 증가한 상호저축은행의 금리는 8%대까지 치솟았다. 매출 규모가 크고 기업 신용도가 높은 일부 중소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중소기업들이 제2금융권 아래에서 자금조달을 하고 있는 실정을 고려하면 자금사정이 팍팍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이를 반영하듯 중소기업중앙회가 9월 전국 1,000여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전체 기업의 27.8%가 금융기관 거래 시 애로사항으로 ‘고금리’를 꼽았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18.5%에서 9.3%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이미 높아진 금리로 기존에 세웠던 투자계획을 연기하거나 재검토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자금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금리 인상기에 일시적으로 재무구조가 나빠질 위험이 큰 신규 사업에 대한 엄두를 아예 내지 못한다.
경기도 파주에서 스마트 솔루션 기기를 제작하는 B 대표는 최근 영국에서 열린 박람회에 출품한 신제품이 유럽 바이어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수십만달러의 수출계약을 따낸 상태다. 하지만 얼마 전 거래 은행으로부터 올해 만기인 대출의 차환금리가 3%포인트 인상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후 깊은 고민에 빠졌다.
B 대표는 “가뜩이나 시중금리 인상으로 경영환경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신규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해나가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신제품을 연구개발(R&D)하면서 1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았지만 신사업을 확대하면서 발생한 영업이익률 하락을 이유로 은행에서 금리 조건을 변경한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또 “신규 사업 진출을 응원해주지 못할망정 일시적인 재무구조 악화를 핑계 삼아 금리를 큰 폭으로 올려 당황스럽다”고 호소했다.
부산 녹산산업단지에서 도금 업체를 운영하는 C 대표 역시 최근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자 좌불안석이다. 그는 과거 주거래은행이 여신정책 전환을 이유로 조기 상환을 요구하면서 경영난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전형적인 ‘비 오는데 우산 뺏기’를 겪었던 것.
이후 복수 이상의 거래 은행을 두는 식으로 혹시나 모를 위험을 대비해왔지만 최근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서 트라우마가 다시 머리를 스치고 있다. C대표는 “은행에서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조마조마하다”며 “전방산업인 자동차산업이 부진하면서 매출이 줄어들고 있어 은행에 이상 신호로 전달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불안해했다.
이에 대해 오진균 중소기업중앙회 정책총괄실장은 “미국 금리 인상으로 대출 금리가 추가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며 “부동산 담보여력이 부족하고 매출액 등 재무제표 흐름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아 대출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사채 등 ‘제2금융권’에서 자금을 어쩔 수 없이 조달해야 하는 문제를 정책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 실장은 “10년 이상 주거래 은행이 거래 기업의 성장성과 CEO의 신용도 등 비재무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대출을 해주는 관계형 금융도 금융권 노조의 반대로 지난해부터 중단됐다”며 “금리 인상 국면에서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이 자금악화로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해욱·서민우·백주연기자 ingaghi@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