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 산업의 호황 사이클이 고점에 다다랐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슈퍼 사이클의 상승기에 올라탄 반도체 경기 ‘고점론’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을 중심으로 간간이 제기돼왔지만 최근 들어 경고음이 울리는 횟수가 잦아져 주목된다. 반도체 경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는 시기도 점차 앞당겨지고 있는 모습이다. 반도체가 국내 경제에 차지하는 막대한 비중을 고려할 때 단순히 개별 산업에 울리는 경고라기보다는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27일 삼성전자 주가의 급락(5.06%)을 유인한 것은 글로벌 IB인 모건스탠리가 내놓은 보고서다. 모건스탠리는 보고서에서 “낸드플래시 메모리의 하강 국면이 시작됐고 가격 하락 속도도 빠를 것”이라면서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 의견을 ‘비중 확대’에서 ‘중립’으로 조정했다.
모건스탠리가 삼성전자 주가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 것은 메모리반도체 호황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2016년 1·4분기 이후 처음으로 낸드 가격이 하락세에 접어들었고 D램 역시 내년 1·4분기까지 강세를 보이겠지만 올해만큼은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메모리반도체인 낸드와 D램 모두 비관론을 펼친 셈이다.
메모리반도체에 대한 경고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초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메모리반도체 시장 거품이 오는 2019년에는 사라질 것”이라면서 비관론을 폈고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도 “반도체 산업이 이미 고점을 지났다”며 투자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띄웠다. 2019년 거품이 빠질 것이라는 가트너의 경고가 1년 가까이 앞당겨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도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시장(매출 기준) 규모가 내년 1,321억6,500만달러(약 151조1,000억원)에 이르겠지만 2019년에는 1,205억5,000만달러로 상승세가 꺾일 것으로 봤다.
실제 낸드 가격은 지난해 5월 이후 지속되던 상승세가 올 9월 꺾였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9월 말 128Gb 기준 낸드 가격은 5.60달러로 전월의 5.78달러보다 3.11% 하락했다. 여기에 ‘반도체굴기’를 선언한 후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중국을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이 늘어나면서 가격 하락뿐 아니라 향후 수급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19년까지 중국에 건설되는 반도체 공장만도 15개에 이른다. 동시다발적으로 막대한 설비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글로벌 IB를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에 대한 거품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지금의 호황 분위기가 1~2년은 더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찮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설비 증설에 나서고 있지만 본격적인 양산 체제를 구축하는 데는 투자 발표 시점으로부터 2년여의 기간이 걸린다”면서 “공급 우위의 시장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맞춰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내년에 집중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호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는 이유다. 구글·아마존 등 정보기술(IT) 업체들의 데이터센터 구축이 급증하고 있고 자율주행과 사물인터넷(IoT) 기술의 적용이 증가하고 있어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덩달아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데이터센터 등에 쓰이는 서버용 D램 비중은 전체 D램 가운데 20.9%를 차지해 2012년 15% 수준에서 5%포인트가량 증가했다.
한발 더 나아가 메모리반도체 가격 조정이 ‘옥석 가리기’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호황기에는 압도적인 수요 때문에 일반 제품 가격이 프리미엄 제품 가격과 엇비슷하게 형성되지만 가격 조정기에 접어들면 수요처들이 프리미엄 제품을 선호하는 현상이 강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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