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43조1,581억원. 내년 국방예산 규모다. 크게 늘어나며 대부분 기록을 갈아치웠다. 증가율이 7%. 9년 만에 가장 많이 늘어났다. 국방부가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쳐 제출한 정부안보다도 404억원 많다. 국회가 예산 심의과정에서 삭감하지 않고 오히려 얹혀준 것도 7년 만에 처음이다. 전년대비 순증액이 2조원대를 넘은 것도 지난 2008년과 내년 단 두 번뿐이다. 순증규모(2조8,234억원)는 박근혜 정부 말기 2년 치 증가분(2조8,787억원)과 맞먹는다.
해마다 3조원 가까이 국방예산이 증액되면 현 정부 임기 말이면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 될 수도 있다. 국방 개혁과 구조개편을 위해서도 예산 증액은 당위성을 갖고 있으나 문제는 지속 가능성 여부다. 당장은 북한의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이라는 한 개의 절벽이 예산 증액의 추진 동력이 되고 있으나 재정 여건 악화라는 재정절벽이 중장기 재원 확보를 막을 수도 있다. 국방예산의 국민경제 환원 효과 극대화는 이미 절벽에 봉착한 마당이다. 국방예산 속에 담긴 세 개의 절벽을 살펴보자.
우선 한국은 문재인 정권 첫해에 짠 국방예산이 큰 폭의 증가를 기록함으로써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를 남길 가능성이 커졌다. 집권하면 으레 국방비 삭감부터 추진하는 게 보통인 다른 나라들의 진보정권과 달리 한국에서는 진보 정권이 되레 국방비를 늘리는 현상을 보여왔다. 임기 5년간 정권별 국방예산 증가율을 보면 노무현 정권 52.9%, 이명박 정권 28.9%. 박근혜 정권 17.4%. 임기를 못 채운 박 정권이 예산을 편성한 회계연도는 4년뿐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노무현 정권 시절의 국방비 증가율이 압도적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런 추세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좌파 정권이 안보를 경시한다’는 비판을 조금이라도 불식시키려 국방비를 증액한다는 시각도 있다. 현실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권을 돌려받으려면 정찰 또는 장거리 타격 자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나같이 고가인 정찰 자산 등을 획득하려니 예산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점증하는 북한의 위협. 북한 핵과 미사일 대응책인 ‘한국형 3축 체계’ 등을 건설하는 데 막대한 재원이 들어간다.
핵과 미사일 도발이라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없었다면 내년과 같은 수준의 국방예산 증액은 어려웠다는 얘기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는 한 국방비 지출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민할 대목은 국방비가 마냥 늘어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잠재성장률은 이미 2%대로 떨어진 마당에 돈 쓸 곳은 천지인 상황이다. 양극화 해소와 노인 빈곤층 지원 등 재정 수요가 널렸다. 재정절벽(fiscal cliff)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경고음도 잇달아 들려온다.
설령 정부 재정이 국방비 증가 수요를 감당할 수 있더라도 숨은그림처럼 잘 보이지 않는 절벽이 하나 더 있다. 국내 방위산업체들이 봉착했거나 곧 맞이할 수요 절벽은 증액될 국방비의 혜택과 가깝지 않다. 북한 핵과 미사일 대응이라는 전장 환경에 대응하려면 고성능 해외 무기 도입이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방산업체에 근무하는 장성 출신 임원은 “전차나 자주포 등의 대형 주문이 마무리 단계여서 수요 절벽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업체들이 수요 절벽에 부닥치면 국방비 지출의 투자승수 효과가 약해지거나 사라질 수 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2015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방비 1,000원 지출 시 782원의 국민소득이, 국방비 10억원을 지출하면 16억8,000만원의 생산 효과와 12.3명의 취업유발 효과가 각각 발생한다. 국방예산은 소모성 예산이라는 통념과 달리 국민 경제에 긍정적 파급효과를 창출한다는 것이지만 이 수치들은 ‘국방예산의 주요 구매에서 국산 우선 원칙이 음으로 양으로 살아있을 때나 가능한 시나리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말한 대로 ‘한국은 미국산 무기의 대량 도입을 약속’한 상태다.
결국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국방비가 늘어나도 국내 산업과 고용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상황이 변했다면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확보와 투입 중심이던 국방예산을 효율성 극대화 차원에서 인식해야 할 시기가 왔다. 절벽을 넘느냐 못 넘느냐에 국방 개혁은 물론 나라 경제의 성패까지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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