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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연극 '발렌타인데이'] 같은 크기의 사랑은 없구나…세남녀의 지독한 러브스토리

미완성 사랑에 절망한 男 자살 후

두여인은 한남자 사랑한 죄로 동거

부등가 사랑에 보내는 랩소디 담아

소비에트연방 시대 은유적 표현도

60세 생일은 맞은 발렌타인(배우 정재은)과 남편 발렌틴의 기일을 애도하는 까쨔(배우 이봉련) /사진제공=예술의전당




등가의 사랑은 판타지다. 현실의 사랑은 준 만큼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할 수 없다. 버지니아 울프가 그의 시 ‘사랑이란’에 사랑을 기다림이자 기쁨, 슬픔, 벌, 고통, 홀로 있기에 가슴 저려오는 고독으로 정의한 이유며 숱한 예술가들이 부등가의 사랑이 낳는 아픔을 그려내는 것도, 그것이 누구나의 공감을 살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예술의전당 ‘싹 큐브(SAC CUBE) 2017’ 기획시리즈로 막을 올린 연극 ‘발렌타인데이’는 ‘21세기 러시아 연극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러시아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주목받는 극작가 이반 뷔릐파예프의 작품으로 한 남자를 사랑한 두 여인의 비극을 초현실적으로 그려낸, 부등가의 사랑에 보내는 랩소디다.

60살의 발렌티나(배우 정재은)는 꿈 속에서 18살의 발렌틴(배우 이명행)과 만난다. 발렌틴이 죽고도 20년째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나지 않는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18살의 발렌틴(배우 이명행)과 발렌티나(배우 정재은)는 서로를 깊이 사랑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한다. 돈을 벌기 위해 시베리아로 떠난 스무살의 발렌틴은 사랑하는 발렌티나가 구세프라는 해군장교와 결혼한다는 전보를 받고 급히 모스크바로 돌아가지만 발렌티나의 어머니는 그녀가 구세프와 결혼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톡으로 떠났다고 거짓말한다. 믿음을 저버린 발렌티나를 기다리는 대신 발렌틴은 그의 주위를 맴돌던 까쨔(배우 이봉련)와 결혼하지만 오랜 세월, 발렌티나를 잊지 못한 채 괴로워한다. 15년이 흐른 어느 날, 서른 다섯 살이 된 발렌틴과 발렌티나는 모스크바의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다. 발렌티나는 구세프와 결혼하지 않았고 거짓 전보를 보낸 사람이 까쨔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서로를 향한 한결같은 마음을 알면서도 두 사람은 까쨔를 사이에 둔 애매한 관계를 이어간다. 결국 발렌티나와 까쨔 사이에서 죄책감으로 고통받던 발렌틴은 발렌티나의 마흔 살 생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미완성의 사랑에 절망하던 발렌티나는 지난 세기의 사랑에 발이 묶인 채, 한 남자를 사랑한 죄로 발렌틴이 살던 공동주택에서 까쨔와 불편한 동거를 이어나간다.

발렌티나(배우 정재은)가 해군 장교와 결혼한다는 소식에 슬퍼하는 발렌틴(배우 이명행)과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까쨔(배우 이봉련)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연출과 번역을 맡은 김종원 플레이원 예술감독은 러시아에서 이 작품이 “소비에트적인 작품으로 읽힌다”고 소개한다. 아시아 초연으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과정에서 정치적인 은유와 상징들을 최소화하고 원시적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지만 여전히 구시대와 새 시대의 갈등, 그 사이에서 화해하지 못하고 번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정서가 작품 전반에 뭉근하게 이어진다.

그러나 이 작품은 세 남녀의 지독한 사랑이야기로만 감상해도 충분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수작이다. 발렌티나의 방(옛 발렌틴의 방) 안에서 현재와 과거, 현실과 꿈의 세계를 절묘하게 교차시킨 연출은 실제 이 작품에 영감을 준 샤갈의 ‘비테프스크’ 연작들처럼 잿빛 현실 위에 ‘사랑의 색채’를 덧입힌 듯 유려하다. 유대인 방랑자의 삶을 살았던 샤갈이 고향인 러시아 비테프스크를 그리워하며 느낀 고통과 슬픔을 아름다운 색채로 화폭에 담아낸 것과 마찬가지로 ‘발렌타인 데이’의 무대는 까뭇한 슬픔 위에 눈송이와 색색의 낙엽을 얹어 초현실적인 미장센을 만들어낸다.

국내에선 접하기 어려운 현대 러시아 연극을 감상할 기회라는 점에 더해 정재은, 이명행, 이봉련 등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의 면면만으로도 이 작품을 감상해야 할 이유가 된다. 내년 1월1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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