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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미래를 이야기하자]로봇강국 도약한다면서...'로봇배달원' 꿈도 못꾸는 한국

<1>구상만 요란...액션 없는 성장비전

4~5년전부터 핵심 선도산업 꼽아놓고 낡은 규제로 성장 발묶어

신성장 토대 될 서비스법·규제프리존법도 국회서 수년째 '낮잠'

규제개혁 후 일자리 32% 늘어난 화장품시장 사례 더 많아져야





세계적인 피자업체 도미노피자와 유통업체 테스코는 지난해 로봇으로 음식을 배송하는 시범 서비스를 시작해 주목을 받았다. 이들이 고용한 로봇 배달원은 사람의 제어 없이도 차와 보행자를 자동으로 피해간다. 고객이 스마트폰을 통해 로봇이 어디쯤 오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기능도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런 혁신적인 서비스를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로봇 배달원 같은 무인운반장치(AVG)가 자율주행을 할 경우 이를 관리·감독할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국내 AVG 업체들은 배달용 로봇을 본격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드론(무인항공기) 산업 역시 유통사업자의 택배업 겸업을 금지하는 규정 때문에 반쪽짜리 대책에 머물고 있다. 아마존은 세계 최고 수준의 드론 배송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회사였다면 드론 배송은 꿈도 못 꾸는 셈이다. 유통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자본력을 갖춘 유통 업계도 드론에 투자한다면 기술 발전속도가 훨씬 빨라질 텐데 기존 기득권의 반대와 낡은 규제로 혁신의 계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낡은 규제는 신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지만 정부는 여전히 각종 규제를 손에 꽉 쥔 채 스스로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9일 오후 열린 2017년 마지막 국회 본회의만 보더라도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나 규제프리존특별법 같은 혁신 촉진 법안들은 마지막까지 논의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이로써 성장의 토대가 될 서비스법은 8년째, 규제프리존법은 4년째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채 국회에서 새해를 맞았다.

중국이 인공지능(AI) 대국을 꿈꾸며 국가적 역량을 모아 관련 산업·기업을 육성하는 동안 이미 4차 산업혁명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은 이같이 혁신을 도울 구심점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경쟁국의 성장을 바라만 보는 신세다.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2016년에는 국정농단 사태에, 2017년에는 분배 중심의 소득주도 성장에 가려 성장 정책이 발붙이기 어려웠다”며 “더 늦추다 골든타임을 영원히 놓칠 수 있는 만큼 국회와 정부가 산업 발전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분야라도 좀 나을까. 우리의 의료서비스 분야는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지난해 11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정부에 전달한 ‘경제현안에 대한 전문가 제언’에서 한 외국인투자기업 역시 “의료 수준이 뛰어나고 교육열이 높은 한국은 아시아 서비스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에 제격”이라고 평가했지만 “그런데도 아직 시장을 못 먹고 있다”고 했다. 서비스업은 제조업 2배 수준의 고용 효과와 높은 부가가치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반드시 육성할 산업으로 꼽힌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영국 전체 부가가치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0.2%에 달하고 프랑스(79.2%), 미국(78.9%), 일본(70.0%) 등도 70%를 넘지만 한국은 여전히 59.2%에 불과하다. 이런 문제 인식에서 서비스산업 육성과 관련 규제 개선을 뼈대로 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2011년 처음 발의됐지만 새해에도 통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대신 새 정부는 혁신성장 대책의 하나로 서비스산업 발전방안을 마련 중이지만 시민단체와 의료계의 반발에 가로막혀 원격진료나 투자개방형 병원 등 핵심 사업이 대상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14개 시도별로 특화된 미래 전략산업을 지정, 관련 규제를 모두 없애는 규제프리존특별법도 같은 운명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전남지사 시절 규제프리존특별법에 찬성했고 더불어민주당도 긍정적인 반응이었지만 청와대가 재벌 특혜 우려를 빌미로 삼아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제자리걸음이다. 지난해 11월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규제프리존법으로 5년간 17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며 “공무원 17만4,000명을 늘리기 위해 50조원을 들이는 것보다 백 배, 천 배는 낫다”고까지 성토했지만 청와대는 꿈쩍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였던 만큼 이 법을 현 정부가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2012년 화장품법 개정을 통해 산업 발전과 일자리 확대를 꾀할 수 있었던 모범사례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당시 사용 가능한 원료 목록을 제시하는 포지티브 방식에서 금지 원료를 지정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뀌고 직접 생산하지 않아도 자신만의 브랜드를 사용해 판매업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 법 개정 전(2008~2011년)과 개정 후(2012~2015년) 화장품 업계 생산액은 27%, 종사자 수는 32%나 증가했다. 이수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규제연구센터 소장은 “혁신성장을 위해 규제개혁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며 “끊임없는 규제혁신으로 생산성이 높은 부문으로 자원 재배치를 촉진하면 양질의 일자리도 많이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종=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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