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 시장 독점이 주택시장의 다양성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소득 수준 증가 등으로 고급주택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정부의 통제 아래에 있는 HUG가 주택시장 안정을 명분으로 분양시장을 통제하면서 시장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40여년 가까이 그대로인 주택법도 주택 수요자들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1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HUG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들어서는 고급주택 ‘나인원한남’의 분양보증 심사를 거절하면서 HUG의 분양보증 시장 독점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HUG는 나인원한남의 분양보증을 거절하면서 주변 아파트 가격에 비해 분양가가 지나치게 높다고 판단했지만 HUG가 기준으로 삼은 비교 대상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애초 HUG가 분양가를 낮추겠다는 목적성을 가지고 수요층이 다른 주택을 무리하게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편으로는 이 같은 HUG의 주장을 지지하는 의견도 있다. 청약저축, 국민주택채권 등을 재원으로 조성된 자금을 일부 부자들만을 위한 고급 주택을 위해 사용하는 건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HUG의 분양보증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주택법에 따라 현재 30가구 이상의 공동주택을 선(先) 분양 할 시에는 의무적으로 분양보증을 가입해야 한다. 시행사나 건설사가 사업 도중 부도가 날 경우 수분양자들을 구제하기 위함이다. 정부는 1996년부터 분양보증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지난 1993년에 설립된 HUG가 유일한 분양보증 기관이다. 부동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급주택을 원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충분히 있다”며 “HUG가 고급주택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준을 마련하든지 아니면 대안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억지로 공급을 막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HUG의 분양보증 독점에 따른 부작용은 정부 내에서도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제3차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에서 HUG의 분양보증 독점을 없애고, 2010년까지 경쟁체제를 도입한다는 방침이 처음으로 나왔다. 2016년에는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분양보증사업 독점 폐지를 위한 공론화 필요성을 제기했으며, 현 정부 출범 이후인 작년 7월에도 공정거래위원회가 HUG의 분양보증 업무 독점을 규제 개선과제 중 하나라고 발표했다. 다만 국토교통부는 주택 시장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이를 막고 있는 상황이다.
HUG의 분양보증 시장 독점에 따른 논란은 앞으로 더 잦아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고급주택 시장에 대한 부동산업계와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외인아파트 부지를 고급 주거 단지로 개발하는 대신금융그룹과 지난해 용산 유엔사부지를 매입해 고급주택 공급 계획을 세워두고 있는 일레븐건설 등 국내 업체뿐만 아니라 미국 및 아시아계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고급주택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의 고급 주거 시장이 소득 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에 비해 아직 발달하지 않아 향후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HUG를 통한 국토부의 주택 시장 통제는 계속해서 논란을 야기 할 것으로 보인다. 한 외국계 투자자는 “분양가상한제를 통한 인위적인 가격 통제도 문제지만 지금처럼 명확한 기준도 없는 HUG의 분양보증 심사로 사업자를 옥죄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불확실성에 따른 사업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기존에 추진하던 사업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며 답답해 했다.
HUG의 분양보증 시장 독점과 함께 40여년 가까이 변하지 않은 낡은 제도도 주택시장의 다양성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지난 1978년 주택보급률이 높지 않았던 시절 도입된 주택건설촉진법(현 주택법)에 따르면 현재 공동주택 및 단독주택 30가구 이상을 공급할 시에는 주택법에 따라 사업계획 승인을 받고 ‘주택건설 기준’과 ‘주택공급 절차’를 준수하도록 되어 있다. 30가구 이상을 공급할 시에는 의무적으로 분양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 부동산 디벨로퍼는 “30가구를 넘어가게 되면 불특정 다수를 위한 상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개성 있는 주택보다는 보편적인 주택을 만들 수 밖에 없다”며 “주택 시장의 다양성을 인정해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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