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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법인 합법 가장한 國富유출 기승] 벱스 프로젝트 떴지만...'한국판 구글세' 여전히 헛바퀴

국부유출 방지 대책은

무형자산 정상가격 산출할 법·제도적 기준도 정의도 없어

고정사업장 규정 탓에 해외에 서버 둔 기업엔 세금 못거둬

기업들 정보공개 꺼려...과세당국 탈세 의심가도 '속수무책'





지난 2017년 세계 곳곳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는 다국적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차원에서 추진하는 벱스(BEPS·국가 간 소득이전을 통한 세원 잠식) 방지 프로그램이 지난해부터 본격 시행됐기 때문이다. 벱스는 자회사와 본사 간 거래비용을 조작하거나 세율이 적은 나라로 자산을 몰아주는 등 편법을 막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OECD는 다국적기업의 계열사 간 거래실적과 가격을 각국의 국세청에 보고서로 작성하도록 했는데 보고서 제출이 지난해부터 실시됐다. 다국적기업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내밀한 내부정보가 과세 관청에 들어가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한국 정부가 ‘다국적기업의 편법적인 자본유출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정부는 현재 기업들이 제출한 보고서를 취합해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벱스 방지 프로그램이 다국적기업의 거래 투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리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것만으로 편법적인 자본유출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형자산의 이전 문제가 대표적이다. 다국적기업이 자회사가 있는 국가에서 본사가 있는 자국으로 자산을 옮길 때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이 무형자산이다. 상표권·특허 등 지적재산권에 대한 사용료나 컨설팅·교육·마케팅 등의 명목으로 대가를 받는 방식이다. 이런 비용들은 가치를 명확하게 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격을 부풀리거나 축소하기 쉽다. 이전가격에 대한 조작인 셈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법·제도는 무형자산의 평가 기준이나 정의에 대해서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가령 이전가격을 조작했다는 점을 입증하려면 정상가격이 얼마라는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정상가격 산출 방법 등이 허술하다. 당국이 이전가격 조작이 의심되는 사례가 있어도 쉽사리 문제 제기를 못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편법적인 자본유출을 막으려면 벱스 방지 프로그램뿐 아니라 우리 자체의 제도적 허점을 보완해야 하는 작업이 필수인데 한국 정부는 국제규제만 얘기하고 법·제도를 정비하려는 노력은 소홀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경근 법무법인 율촌 세무사도 “무형자산의 평가 방법 등에 대해서 OECD가 자세한 가이드라인을 이미 발표했다”며 “가이드라인을 참조해서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등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도 구멍은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이른바 ‘고정사업장’ 규정 때문에 구글·애플 등 굴지의 정보기술(IT)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한국에서 번 수익에 대한 법인세를 거두려면 국내에 고정사업장이 있어야 하고 인터넷 기업의 경우 서버를 둔 곳을 고정사업장으로 본다는 것이 국제적인 규칙이다. 구글·애플 등은 이런 규정을 이용해 세 부담이 적은 아일랜드에 서버를 두는 방법으로 대다수 국가에서 법인세를 내고 있지 않다.

물론 구글·애플 등에 제대로 과세하지 못하는 것은 전 세계 공통의 문제라 주요20개국(G20) 차원에서 고정사업장의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나라 간 이견이 커 합의에 이를지 불투명하다. 한국 자체적으로도 국제적인 논의와 별개로 구글·애플 등에 합당한 세금을 물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국내 과세 관청과 다국적기업 간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할 장치가 전무하다는 점도 문제다. 외국계 기업은 본사가 해외에 있어 과세 관청이 거래정보 등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국세청 입장에서는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 여부를 가려내려면 해당 기업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데 기업은 내부거래정보를 공개하기를 꺼린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조세회피를 입증할 책임은 특별한 예외가 없으면 국세청이 져야 하는 상황이다.

대형 로펌의 한 관계자는 “국제 조세 사건은 국세청의 입증 책임 등 절차적 문제 때문에 유난히 국세청의 패소율이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조세회피가 명백한 경우는 입증 책임을 기업들이 지게 한다든지 특정 기준에 부합하는 조세회피 혐의 거래는 기업이 사전에 과세당국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조세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국내 미등록 특허에 대한 사용료는 과세할 수 없도록 하는 ‘한미 조세조약’도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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