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법정 구속되면서 롯데그룹의 미래도 ‘시계 제로’ 상태에 빠졌다. ‘뉴 롯데의 원년’을 선포하며 의욕적으로 올해를 시작했지만 ‘최순실 게이트’에 결국 발목이 잡혔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뇌물공여 혐의로 신 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지난해 말 롯데 총수 일가의 경영비리 재판에서 징역 1년8개월, 집행유예 2년으로 ‘배임’의 고개를 넘었던 신 회장은 ‘국정농단’의 늪에서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신 회장이 갑작스럽게 ‘영어의 몸’이 되면서 롯데의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그룹의 현안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물려 있어 신 회장만이 엉켜 있는 실타래를 풀 수 있다. 그만큼 롯데가 받는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당장 신 회장의 한국과 일본 롯데 경영권은 거센 도전을 받을 수 있다. 신 회장은 현재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과 일본롯데홀딩스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신 회장은 지금까지 수차례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도 일본 롯데 경영진과 투자자에게 “재판에 성실히 임해 무죄를 밝히겠다”며 지지를 요청했고 이에 일본 경영진은 신 회장에 대한 지지 의사를 줄곧 유지했다. 하지만 신 회장이 실형을 받음으로써 일본 경영진에게 한 약속도 지켜지지 못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일본 롯데 경영진이 신 회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개연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신 회장의 부재를 틈타 경영 복귀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신 전 부회장이 신 회장을 대신해 일본 롯데 경영진의 신뢰를 얻어 재등장할 경우 롯데 경영권 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 신 전 부회장이 지난해 한국 롯데 계열사의 주식을 매각해 확보해놓은 자금으로 일본에서 영향력을 늘리든가, 호텔롯데 주식을 매입하는 등 반전의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 회장의 일본 롯데에 대한 경영권이 흔들리면 한국 롯데 수성도 장담하지 못하게 된다. 롯데지주(004990)가 지난해 10월 출범하면서 호텔롯데와 롯데알미늄·롯데건설·롯데케미칼 등을 제외한 식품·유통 계열사에 대한 신 회장의 지배력은 공고해졌다. 하지만 한국 롯데는 일본 롯데를 장악하지 못할 경우 한없이 약해질 수 있는 지배구조로 돼 있다. 여전히 한국 롯데의 정점에는 호텔롯데가 있고 호텔롯데의 대주주는 일본롯데홀딩스로 지분의 대부분을 광윤사와 L투자회사 등 일본 롯데 계열이 보유하고 있다. 일본 롯데를 움켜쥐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한국 롯데는 롯데지주에 속한 계열사와 호텔롯데가 지배하는 계열사로 양분될 수도 있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위한 마무리 작업도 예정대로 진행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이 신 회장의 ‘오른팔’로 지주회사 전환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신 회장의 지분이 관계되는 만큼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많지 않다. 단적으로 지주회사 전환의 마무리 과제인 호텔롯데 상장 역시 일본 롯데의 동의 없이는 진행되기 어렵고 이 과정에서 신 회장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고경영자의 역할이 크다 하더라도 오너 그룹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신 회장의 부재는 롯데그룹으로서는 처음 맞게 되는 상황이라 혼란이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 회장이 추진한 각종 투자나 글로벌 사업도 위태롭게 됐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성 조치에 대한 출구전략 마련도 어렵게 됐다. 중국을 대신해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베트남·인도네시아 사업도 주춤할 수 있다. 롯데는 인도네시아에 40억달러 규모의 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할 예정이었다. 롯데는 또 인도와 미얀마에서는 식품 부문 사업을, 베트남에서는 20억달러를 투자해 복합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2016년 신 회장이 경영권 분쟁과 경영비리 재판에 휘말리면서 내세웠던 윤리경영 강화와 사회공헌 확대, 기업문화 개선 등의 경영 쇄신안도 힘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가 모범적으로 추진하는 남성 육아휴직 정책 역시 신 회장의 의지 때문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롯데는 신 회장의 법정 구속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례적으로 재판 결과에 대해 ‘참담하다’ ‘아쉽다’는 표현을 쓰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당장 황 부회장 중심의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해 신 회장의 빈자리를 메울 예정이지만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은 존중하지만 결과에 대해 매우 아쉽다”며 “호텔롯데 상장, 지주회사 완성, 고용 확대 등에 큰 악재가 될까 우려스럽다”고 답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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