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 볼을 쳐내던 박세리(41)의 하얀 발을 기억할 것이다. 지난 1998년 US 여자오픈 연장전 때의 일이다. 당시 IMF 외환위기 사태로 시름에 잠긴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준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꼭 20년이 지났다. 당시 박세리가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참가했던 US 여자오픈은 이제 ‘미국에서 열리는 한국 여자오픈’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한국 선수들의 무대가 됐다. 박세리 뒤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3년 동안 8차례나 한국인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0번째 한국인 US 여자오픈 챔피언이 올해 탄생할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인 제73회 US 여자오픈(총상금 500만달러)이 31일(이하 한국시간)부터 나흘간 미국 앨라배마주 숄크리크의 숄크리크골프장(파72·6,689야드)에서 열린다.
올해도 많은 한국 선수가 우승 후보군을 형성하는 가운데 디펜딩챔피언 박성현(25·KEB하나은행)이 눈길을 끈다. US 여자오픈 2연패는 호주의 캐리 웹(2000년·2001년) 이후 나오지 않고 있다. 국내 무대를 평정하고 지난 시즌 미국에 진출한 박성현은 우승 소식을 전하지 못하다가 이 대회에서 메이저 왕관으로 첫 승을 장식했다. 당시 직접 관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박성현을 향해 기립박수를 보냈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2017년 US 여자오픈 우승자 박성현에게 축하를 보낸다”는 글을 올렸다. 박성현은 이 우승을 발판으로 올해의 선수, 상금왕, 신인상을 휩쓸었다. 다만 이번 시즌 자신의 완전한 경기력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이달 초 텍사스 클래식에서 시즌 첫 우승을 거뒀지만 28일 끝난 직전 대회 볼빅 챔피언십에서 올해만 세 번째로 컷 통과에 실패했다.
세계랭킹 1위 박인비(30·KB금융그룹)는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US 여자오픈에서 2승(2008년·2013년)을 거뒀다. 이 대회 5년 주기 우승 도전이자 투어 통산 20승 재도전이다. ‘메이저 승수 추가’를 올해 목표로 밝힌 박인비의 컨디션은 좋다. 올 시즌 파운더스컵 우승 이후 첫 메이저 ANA 인스퍼레이션 공동 2위, 롯데 챔피언십 공동 3위, LA 오픈 공동 2위에 올랐다. 20일에는 두산 매치플레이에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대회 첫 우승도 수확했다.
KLPGA 투어 특급 신인 최혜진(19·롯데)도 지켜볼 만하다. 그는 지난해 이 대회에 아마추어 자격으로 출전해 박성현에 2타 뒤진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 시즌 KLPGA 투어에서 아마추어 신분으로 2승을 거두고 이번 시즌에도 1승을 거두며 맹활약하고 있다. 상금·대상포인트 2위를 달리는 최혜진 역시 직전 E1 채리티오픈에서 프로 데뷔 후 첫 컷오프의 고배를 들었기에 박성현과 함께 이번 대회에서 반등을 다짐하고 있다. 2015년 우승자 전인지(24·KB금융그룹), 2010년 챔피언 유소연(28·메디힐)도 정상 탈환에 도전한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또는 한국계 선수가 우승하면 LPGA 투어 통산 200승 합작을 달성하게 된다. 한국 국적 선수들만 계산하면 167승을 기록하고 있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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