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3일(현지시간) 10년 만에 기준금리를 2%대로 올리자 신흥국 금융시장은 즉각 민감하게 출렁거리며 강한 위기감을 드러냈다. 최근의 신흥국 통화위기가 지난 1997년 외환위기를 연상하게 한다는 경고가 나오는 상황에서 미 연준이 올해 금리 인상 횟수를 총 네 차례로 늘릴 방침인 것으로 나타나자 신흥국 금융시장에 드리운 먹구름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미 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화 상승이 달러화 부채가 많은 신흥국에 대한 우려를 키우면서 시장의 긴축발작과 연쇄 디폴트(채무불이행)까지 촉발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날 가장 크게 출렁인 신흥시장은 신흥국 ‘6월 위기설’의 진앙인 아르헨티나다. 이날 아르헨티나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잠정 합의한 구제금융 500억달러 중 75억달러에 대한 사용승인을 요청했지만 미 금리 인상 소식에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페소화 가치는 2%가량 급락, 사상 최저치인 26.26페소를 기록했다. 아르헨티나 주가지수인 메르발지수도 3만233.57로 장을 마치며 전날보다 1.7% 하락했다.
브라질 상파울루증시의 보베스파지수도 0.9% 하락한 7만2,122.13으로 마감했다. 브라질 헤알화와 터키 리라화 등 이미 연초 대비 10% 이상 가치가 하락한 주요 신흥국 통화도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브라운브러더스해리먼의 윈 틴은 “연준이 매파 본색을 드러냈다”며 “신흥국 통화는 계속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신흥시장 전반의 흐름을 보여주는 주요 지수도 일제히 약세를 보이면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지수는 전날보다 0.4% 하락한 1,135.68을 기록하며 2016년 1월 이후 처음으로 3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의 잇따른 금리 인상으로 신흥국에서 투자자금이 급격히 유출돼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연쇄 디폴트가 일어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금리가 오르고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 신흥국 채권·통화 등 자산에서는 글로벌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신흥국들의 부채 부담은 커지기 때문이다. 이머징마켓포트폴리오리서치(EPFR) 데이터에 따르면 신흥국 채권펀드에서는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6일까지 19억달러가 빠져나가며 7주일째 순유출이 이어졌다.
특히 신흥국의 연쇄 디폴트는 결국 전 세계 경제에 충격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2013년과 같은 긴축발작을 넘어 2008년 금융위기,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흥국의 통화가치 급락과 자본유출 등의 타격에 아랑곳하지 않은 미국의 긴축 행보가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는 ‘근린궁핍화전략(beggar-thy-neighbor)’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데스먼드 래크만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위원은 “연준의 긴축정책은 신흥국에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며 “이 문제들은 글로벌 경제 침체로 이어져 결국 미국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일본 등 일부 선진국들이 긴축 모드로 돌아서기 시작한 것도 앞으로 신흥국 금융시장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중앙은행(ECB)이 예상보다 일찍 긴축 모드로 전환할 경우 이는 잠재적으로 신흥국으로의 자금유입의 종말을 암시한다며 “ECB의 결정이 연준보다 신흥국 통화에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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