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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최종현 회장 20주기]"10년앞 준비한 혜안·뚝심 배우자"...다시 뜨는 '최종현 리더십'

대한석유公·한국이동통신 인수 등 'SK 성장의 씨앗' 심어

"한국 죽일 셈이냐" 휠체어 탄 채 IMF 찾아가 고금리 비판

"기업 자유롭게 해줘야" 정치권력 향해 쓴소리도 마다안해

지난 199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모임에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 참석한 최종현 SK 선대회장(왼쪽 사진). 1991년 SK울산콤플렉스 준공식에 참석해 설명을 듣고 있는 최 선대회장(가운데 사진). 최 선대회장이 추진해 개발에 성공한 북예멘 마리브 유전(오른쪽 사진). /사진제공=SK그룹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대로 진행하게 되면 저보다 한국 경제가 먼저 죽을 겁니다.”

지난 1997년 무렵 미셸 캉드쉬 IMF 총재가 한국을 극비 방문해 경제단체장과 특별간담회를 하던 당시 최종현 SK 선대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자격으로 IMF 측에 이렇게 말했다. 지병이 심각해져 휠체어를 탄 채 회의에 참석한 그는 이 자리에서 한국의 고금리 긴축을 강요한다면 한국 경제가 고사할 것이라고 IMF를 강하게 비판했다. 최 선대회장이 세상을 떠나기 7개월 전의 일이었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한 재계 인사는 “최 선대회장의 비판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IMF는 이후 이전의 권고안보다 한국 실정에 맞는 회생안을 제시했다”며 “모든 사람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도 그는 한국 경제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소신 있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던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재계 3위인 SK그룹의 기반을 닦은 최 선대회장의 타계 20주기가 오는 26일로 다가오면서 그의 기업가정신을 기리는 재계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다가올 변화를 예상하고 대비하는 혜안과 뚝심을 지닌 기업가로서의 모습뿐만 아니라 교수들과도 수시로 토론을 벌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던 경제 전문가로서, 인재에 투자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로서 그는 현재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굳이 1997년 외환위기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최 선대회장은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한 순간마다 해결사로 등장했다. 1차 석유파동 이후 중동 산유국의 ‘석유 무기화’가 현실화되자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도입되는 원유량을 늘려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사우디와의 특별한 끈이 없던 정부는 당시 사우디 석유상과 친분이 있던 최 선대회장에게 ‘SOS’를 보냈고 최 선대회장은 원유도입량을 하루 15만배럴에서 20만배럴로 늘리는 교섭을 성사시켰다. 최 선대회장이 사회와 국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던 것은 그의 기업관 때문이다. ‘사업과 기술로 나라에 보답하고, 자원을 확보해 나라를 잘살게 한다’는 그가 평소에 버릇처럼 말하던 소명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그를 ‘공익’과 ‘사익’의 균형을 갖춘 기업가로 기억하고 있다.

사회와 국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던 최 선대회장은 실제로는 철저한 시장주의자였다. 그런 소신을 숨기지 않았고 쓴소리도 서슴지 않던 용기와 철학을 가진 기업인이었다. 1993년 전경련 회장을 맡을 당시 자유주의 시장경제 사상을 대중화하기 위해 연구기관인 자유기업센터를 발족시켰고 여전히 권위주의적이었던 정부를 향해 정치권력으로부터 기업을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그해 이코노미스트클럽 강연 도중 “경제를 지배하는 정치논리가 아니라 경제를 도우려는 정치논리를 재정립하는 것이 국제화·개방화를 앞둔 우리나라에 필요한 국가과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을 가진 기업인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세계화의 개념조차 생소하던 1990년대 초 그는 국제관계의 흐름이 글로벌리제이션(세계화)으로 갈 것임을 확신하고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비교우위에 설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선대회장의 이런 능력은 SK그룹의 성장과정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선경화학(현 SKC)의 폴리에스터 필름 기술 개발 사례다. 당시 최 선대회장은 SK그룹이 정밀화학 산업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독일·일본 기업들이 독점하며 공개하지 않던 기술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400억여원을 들여 3년간 연구한 끝에 독자 개발에 성공했다.

1980년 대한석유공사 인수도 10여년 전부터 최 선대회장이 앞을 내다보고 준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 선대회장은 1970년대부터 ‘석유에서 섬유까지’라는 목표를 세우고 사우디 등 중동 국가 및 기업들과 친분을 맺는 한편 정유 공장과 석유화학 공장 설립 준비를 해왔다.

1994년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 인수도 운이 좋아 사업을 따낸 것이 아니라 최 선대회장이 수년 전부터 준비해온 결과였다. 최 선대회장은 정유와 석유화학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뒤 정보통신업을 새로운 중점 사업 분야로 삼았다. 1980년대부터 미국에 미주경영기획실을 설치하고 정보통신사업 전문팀을 구성했으며 1989년에는 미국 현지법인 유크로닉스를 설립해 이동전화사업을 준비하기도 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최 선대회장이 보여준 기업가정신은 경제 전반에 대한 위기감이 심화되고 있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며 “국가 경쟁력, 소프트 파워, 세계화 등 그가 시대를 앞서 한국 경제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처럼 현재 기업 경영자들도 혜안과 패기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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