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도체 업계의 최대 화두는 유례없는 호황을 구가 중인 메모리 시황의 지속 여부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 2·4분기 실적 경신 행진이 꺾였음에도 반도체만은 독야청청이다. 11조 6,1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2016년 1분기(2조 6,300억원) 이후 10분기 연속 분기 실적을 깼다. 이익률도 55%를 넘는다. 전성기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다. 그래서 언제 슈퍼 호황이 꺾일지가 초관심인데, 총대를 외국계 증권사가 맸다. 지난 8월 모건스탠리가 반도체 섹터에 대한 투자 전망을 ‘중립’에서 ‘주의’로 내린 데 이어 골드만삭스는 “낸드에 이어 마지막 보루인 D램에도 노란불이 들어왔다”며 슬슬 끓기 시작하는 비관론에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기업들은 이런 전망에 손사래를 치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김기남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까지 나서 “적어도 올 4·4분기까지 D램 시황에 큰 변화가 없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기업이 믿는 구석은 뭘까.
①안정적인 고정거래가=반도체 가격은 현물가와 고정거래가로 나뉜다. 쉽게 설명하면 현물가는 소비자 판매가고, 고정거래가는 기업 간 거래에 적용되는 가격이다. 가령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업체인 중국의 화웨이에 파는 반도체 칩 가격의 기준점이 바로 고정거래가다. 고정거래가 전체 거래의 90%라, 시황의 바로미터가 된다. 그런데 D램의 고정거래가는 최근까지 안정적 흐름이다. 올 4월까지 상승추세를 그렸던 D램의 고정거래가격은 이후 8월까지 4개월간 하락 없이 일정 가격을 지탱하고 있다. D램보다 시황이 더 불안정한 낸드도 조금 떨어졌지만, 하방 경직성이 유지되고 있다.
②설사 가격이 빠져도 수요가 탄탄하다=기업들은 최근까지 오르기만 했던 메모리 가격이 “오히려 비정상이었다”고 말한다. 이런 견해는 달리 보면 자신감의 표현이다. 메모리 가격이 빠지면 수요가 더 붙을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예전만 해도 PC 교체 주기에 맞춰 메모리 시황이 4년을 주기로 부침을 거듭했지만 이제는 칩의 수요처가 스마트폰, 데이터 센터, PC, 클라우드 등으로 다양화됐다”며 “가격이 내리면 수요가 붙을 것”이라고 봤다. 다른 관계자도 “칩 수요업체가 ‘우리도 살아야 되는데 좀 가격이 빠져야 하지 않느냐’고 하소연한다”며 “데이터 용량의 확대와 빠른 처리는 4차 산업혁명의 요체인데, 결국 칩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서라도 일정 부분의 메모리 가격 조정은 불가피하고, 이는 반도체 생산 업체에도 득이 된다는 논리다.
③후발주자의 위협은 중장기 악재일뿐=기업들이 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중국 위협론은 부풀려진 측면이 없지 않다. 중국은 최근에야 낸드를 개발했다. 말 그대로 첫 생산일뿐 양산이 아니다. 당시 미국에서 시연이 이뤄졌는데 시장에서는 “기대보다 중국의 기술력이 못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4~5년 전에 내놓은 제품을 만들면서도 박한 평가를 받은 것이다. 저가 제품부터 우리 제품을 대체하겠지만 당장 시장 구도에 충격을 주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심지어 D램은 제품을 여태 내놓지도 못했다. 중국을 잠재 위협으로 보고 대응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중국 위협론을 이유로 공급 과잉을 말하기는 이른 감이 있다.
④시황이 꺾이면 강자가 살아남아=국내 업체는 치킨 게임에서 살아남아 현 위치에 섰다. 남들이 주저할 때 선제 투자로 경쟁력을 확 끌려 올렸다. 기술력을 갖춘 선두업체는 내성도 강하다. 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그 불똥은 후발주자인 중국→마이크론→SK하이닉스→삼성전자 순으로 튈 것이다. 치킨게임에서 생존해 헤게모니를 잡은 업체 입장에서 업황 하락은 어찌 보면 꽃놀이패일 수도 있다. 이참에 추격자를 완전히 고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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