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성장의 핵심축이다. 기업이 투자를 해야 경기 선순환이 가능하다. 기업 투자가 소비와 고용을 촉진해 내수를 살리고 수출도 늘린다. 경제 성장의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곳곳에는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 활동을 옥죄는 ‘붉은 깃발’들이 꽂혀 있다. 최근에는 기업의 정당한 이윤추구 행위를 죄악시하려는 분위기마저 엿보인다.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붉은 깃발 열 가지를 정리했다. 경제 활력을 강조하는 새 경제팀이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대상들이다.
①경제의 정치화=“경제의 위기라기보다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입니다.” 최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날린 이 회심의 발언은 성장의 문제를 경제 논리로 풀지 않고 정치적 흥정 대상으로 삼는 관행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경제 성장을 위해 기업의 투자를 유도한다면서 규제 완화와 세제혜택 부여와 같은 투자 환경 조성에는 소홀하다. 오히려 목소리 큰 강성 기득권 세력에 떠밀려 기업 옥죄기에 급급하다.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같은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에 ‘성장은 악, 분배는 선’으로 보는 정치적·이념적 색채가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성장 정책마저 이념적 틀 안에 매몰돼 있다 보니 경제 문제를 경제 논리로 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성장률을 극대화해야 하는 경제 정책 이슈가 정치화되고 이는 결국 경제 논리를 거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인 저성장의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도 불평등, 양극화, 대기업 경제력 집중과 같은 이념적 시각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직접 주재한 공정경제점검회의에서 5대 그룹 경영인 앞에서 “성장 과정에서 공정을 잃었고 함께 이룬 결과물이 대기업집단에 집중됐다”고 지적했다.
②과도한 입법 권력=기업의 자유로운 경영 활동을 저해하는 과도한 입법 관행도 끊어버려야 할 족쇄다. ‘모범 답안’은 없는 기업 지배구조부터 사업 당사자 간 계약 조건까지 법이 들여다보고 간섭하려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입법 추진이 가장 큰 불확실성 요인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급기야 최근에는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이익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협력이익공유제까지 법제화가 추진되고 있다.
입법 권한이 특정 기업과 오너를 겨냥해 남용되는 것도 문제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겨냥한 보험업법 개정이 대표적이다. 보험사의 주식자산 평가기준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의 타깃은 사실상 삼성이 유일하다. 한진가(家) 구성원의 갑질 사태를 계기로 ‘조현아·조현민 방지법’과 같은 입법이 추진되는 것도 과잉이라는 지적이 많다. 극히 일부 오너의 비정상적 일탈 행위를 입법을 통해 규율하려 한다는 이유에서다. 기업 현실을 외면한 과도한 입법은 먹거리 발굴과 이익 극대화에 전력해야 할 기업인들의 활동을 옥죌 수밖에 없다.
정작 재계에서 강력하게 요구하는 차등의결권과 같은 경영권 방어수단은 글로벌 주요 선진국들이 도입하고 있는데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 한쪽으로 치우친 입법 권력이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③권력화된 노조=민주노총을 겨냥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라고 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최근 발언은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 강성 노조가 얼마나 권력화돼 있는지 잘 보여준다. 노조는 현 정권의 강력한 지지 기반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마저도 노조의 권력화가 심각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현대차 노조가 대표적인 예다. 판매량 부진으로 위기에 빠진 광주 지역사회와 현대차가 임금을 줄이는 대신 1만2,000여개 일자리를 창출해보려는 시도를 노조는 거세게 가로막고 있다. 자신들의 일감이 줄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집단이기주의가 작용했다. 현대차 노조는 광주형 일자리가 추진되면 총파업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다. 노조는 이 와중에 4박5일 일정으로 조합원 3,000명을 중국으로 해외 연수를 보내겠다고 고집해 끝내 관철시켰다.
한국개발연구원(KD),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기관들이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지적하며 유연화에 나설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강성 노조의 반대에 한 걸음도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2010년과 2016년 고용의 유연·안전성 지수를 추적한 결과 우리나라는 유연성은 떨어지고 안정성은 높아졌다.
④감시 기능 넘어선 시민단체=올해 9월 더불어민주당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전국 네트워크’와 함께 가맹사업법,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등 10대 우선 입법 과제를 제시했다. 하나같이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는 법안들이다. 시민단체가 집권 여당을 뒷배 삼아 입법권 근처까지 접근한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문재인 정부 들어 청와대는 물론 정부 각 부처의 요직을 꿰찬 시민단체가 자리 잡고 있다. 경제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청와대 전·현직 장하성·김수현 정책실장 모두 시민운동가 출신이고 대기업집단을 다루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김상조 위원장 역시 참여연대 출신이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민주노총 출신이다. 기업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인 셈이다. 시민운동가들이 재야에 머물지 않고 권력 핵심부에 진입하면서 기업을 개혁 대상 내지, 분배의 대상으로 삼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⑤깨지지 않는 기득권=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임에도 전 세계적 트렌드가 된 공유경제에 첫발도 떼지 못한 것은 기득권 세력의 집단 반발 때문이다. 우버와 같은 승차공유(카풀)는 국민 대다수의 편의성에도 불구하고 약 30만명 규모 택시 종사자들의 집단 반발에 꽉 막혀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카풀 업체인 럭시에 지분 투자를 했다가 택시 업계의 반발에 지분을 되팔기까지 했다. 택시 업계가 현대차 불매운동에 나설 조짐까지 보이는 등 실력행사를 했기 때문이다. 숙박공유 역시 우리나라는 숙박 업계의 반발 탓에 도심에서 외국인의 이용만 가능할 뿐 내국인에는 사용이 제한돼 있다. 원격의료 역시 의사들의 반발에 제자리걸음이다. 관가에서는 “택시 정책 담당 공무원은 택시기사에게 뺨 맞을 각오하고 일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로 기득권의 강성 집단행동이 만연해 있다. 민간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기존 사업주들의 반발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보완책을 마련해보겠다는 정부의 중재 역할 자체를 거부하고 나서면 신산업 육성은 요원하다”고 말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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