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강희제가 어느 날 평복 차림으로 홀로 궁을 나섰다가 작은 한약방 한 곳을 발견했다. 오래전부터 괴병에 시달려왔던 강희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약방 주인에게 자신의 증상을 털어놓았다. 한약방 주인은 선반에서 8근의 대황을 꺼내 달인 물로 목욕을 하면 곧 나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강희제가 반신반의하면서도 궁으로 돌아가 한약방 주인의 처방대로 했더니 며칠 만에 골치를 썩히던 지병이 감쪽같이 나았다. 강희제는 큰 한약방을 차리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약속대로 은전을 내리면서 ‘퉁런탕(同仁堂·동인당)’이라는 상호를 하사하고 개업식에 직접 참석했다고 한다.
강희제 시절인 1669년 베이징에 설립된 퉁런탕은 중국 최대의 생약제조 업체다. 의사 집안 출신의 러셴양이 세웠는데 창업 초기부터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하늘만은 알아준다’는 환자 중심의 경영이념을 엄격하게 고수하고 있다. 1723년 황실약방으로 공식 지정된 후 청나라 황제 8명이 이곳에서 약을 지어 먹었다고 한다. 뛰어난 품질 덕택에 350년의 역사 속에서 국약(國藥)은 곧 퉁런탕의 약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중의약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마오타이·취안쥐더 등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전통기업 브랜드 ‘라오쯔하오’에 일찌감치 선정된 것은 물론이다.
퉁런탕이 오늘날의 명성을 얻은 데는 ‘우황청심환(牛黃淸心丸)’의 역할이 컸다. 우황청심환은 송나라 한의서를 참조해 만든 것으로 까다롭게 선별된 원료와 다수의 본초서에 근거한 전통재배기술로 만들어져 한때 중국을 찾는 이들의 선물 1호로 꼽히기도 했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사태에는 면역력을 높여주는 것으로 알려진 반란건 등 한약재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는 후문이다. 1955년에는 창업자의 13대 후손이 퉁런탕을 국가에 사실상 헌납하면서 합영회사를 만들었고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현재 14개 국가에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엊그제 중국을 방문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이징 경제기술개발구의 퉁런탕을 찾아가 30분간 둘러봤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짐승의 뿔과 약초를 재료로 하는 고급 한약재에 관심을 보였다며 전통의료를 새로운 외화획득산업으로 키울 요량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모쪼록 김 위원장이 중국의 경제발전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면 과감한 개혁·개방으로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나서기를 기대한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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