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아픈사회, 우리가 보듬어야 할 이웃] 접근금지 어겨도 과태료만...가해자 처벌 강화 '강력한 입법' 절실

⑧ 폭력피해자 - 겉도는 방지·보호 대책

"가정·데이트폭력은 범죄" 정부가 입법부 설득나서야

가해자 격리 가장 중요...접근금지 '사람' 기준 변경을

피해자 쉼터는 임시방편...직업교육 등 자립지원 확대

“또 신고해봐라. 네가 신고해봤자 난 이렇게 (경찰에서 풀려나) 지낼 수 있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강서구 내발산동 환청 살인사건의 피해자 딸인 A(31)씨는 4년 전 아버지에게 들은 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A씨가 초등학생이 되던 때부터 계속된 아버지의 가정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아버지는 지난 2015년 6월 딸에게 흉기를 들고 달려들기까지 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A씨 아버지는 곧 풀려났다. 어머니가 가족에게 돌아갈 보복을 우려해 경찰에 선처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로도 가정폭력은 계속됐고 A씨 어머니는 결국 지난해 12월7일 새벽 “아내를 죽여라”라는 환청을 들은 남편에 의해 칼에 수차례 찔려 숨졌다.

그간 가정·데이트폭력은 집안·개인 문제로 치부됐다. 경찰에 신고해도 현행범 체포가 아닌 계도 수준으로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이에 가정·데이트폭력을 범죄행위로 인식하는 근본적 변화와 더불어 경찰의 적극적인 대응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가정·데이트폭력을 ‘사적 문제’로 치부하는 사회적 인식이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폭력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친밀한 관계에 가려져 문제 해결이 힘든 구조적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은 “살인이나 과도한 폭력이 없으면 사회는 가정·데이트폭력을 사소한 문제로 치부한다”며 “이런 방치가 계속되다가 점차 폭력 수위가 높아지면 등촌동 살인 사건처럼 걷잡을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해 11월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현행범 즉시체포, 접근금지 어길시 징역형’ 등의 강화된 범정부 차원의 가정폭력 방지대책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가정·데이트폭력 피해자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조치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가해자 처벌 강화가 중요한 대안으로 꼽혔다. 기존에는 폭력 사건 후 가해자가 접근금지 조치를 어기고 피해자에게 접근하더라도 과태료 처분에 그쳤다. 이는 법적 강제성이 떨어져 가해자가 손쉽게 2차 피해를 일으키는 역할을 했다.

변 원장은 “가정·데이트폭력이 발생하면 이는 범죄이기에 강력한 공권력을 투입해 양측을 분리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기존 과태료 처분을 징역이나 벌금 처분으로 높여 범죄 기록이 남도록 하는 등 강력한 방안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접근금지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자택이나 회사 등 특정 장소 중심으로 돼 있는 접근금지 명령이 사람을 중심으로 내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여성가족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피해자가 요구하는 경찰대응 중 1순위는 가해자와의 격리다.



안전조치 못지않게 피해자의 자립 역량을 높일 필요성도 강조됐다. 경제적 독립 능력이 떨어지는 피해자는 가해자 폭력의 굴레에 갇히기 쉽기 때문이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현재 예산 지원이 대체로 가정·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이 임시로 머물 수 있는 쉼터로 몰리는데 이는 근본적 대안이 아니다”라며 “일반 상담소나 구청 등에서도 이들의 경제·정서적 자립을 돕도록 통로를 확충하는 데 예산이 쓰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가정·데이트폭력 피해자가 직업교육기관을 이용하더라도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는 추가 보완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가정·데이트폭력 예방을 위한 포괄 입법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3년에도 정부는 가정·데이트폭력 방지를 위한 대책을 발표하며 현행범 체포와 상습 가해자의 구속 수사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관련 입법이 지연되며 이 같은 대책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이 같은 이유로 지난해 11월 정부에서 내놓은 가정·데이트폭력 정부종합대책도 입법이 동반되지 않으면 단순 선언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송 사무처장은 “지난 종합대책은 ‘이렇게 해결하겠다’고 정부에서 선언한 수준이지 당장 시행될 수는 없다”며 “입법부를 움직이게 하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정부안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사무처장은 “그간 가정·데이트폭력을 막기 위한 수많은 법안이 나왔지만 모두 폐기됐다”며 “정부가 안을 내서 입법부를 설득해야 지난 가정·데이트폭력 정부종합대책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