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국내의 한 벤처기업은 주식운용에서 상금 1억원을 걸고 인간과 인공지능(AI)의 대결을 펼쳤다. 하루 6시간씩 5일 동안 주식거래 대회에서 AI는 예선을 거친 주식전문가보다 1,000만원 이상 싼 가격에 주식을 사는 등 월등한 실력을 뽐내며 승리했다.
지난해 하반기 급락장에서 대부분의 공모펀드 수익률이 곤두박질 친 반면 AI를 앞세운 펀드들은 상당히 선방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업계에서 AI 방식을 활용한 주식거래가 크게 늘고 있는데 이제 운용업계에서도 AI가 운용하는 펀드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금융당국이 로봇펀드 관련 규제를 풀면서 ‘알파고 펀드’ 바람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큐자산운용은 이달 말 AI알고리즘으로 운용하는 200억원 규모의 사모펀드를 출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빅데이터 분석 전문업체인 인사이저와 손잡고 국내파생, 해외통화, 퀀트전략을 접목한 AI펀드를 준비 중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대신증권 등 일부 대형 증권사도 AI펀드를 선보이고 있는데 AI 형태의 사모펀드 출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 같은 배경에는 AI펀드의 운용 능력이 예상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이 자리한다. 실제로 국내에 출시된 40여종의 AI펀드 중 14종은 지난해 급락장에서도 연간 수익률이 -1% 안팎에 그치며 스타 펀드매니저들의 실적을 압도했다. NH-아문디디셈버글로벌로보어드바이저펀드의 경우 최근 1년 수익률이 2.05%로 급락장에서도 플러스 수익률을 냈고 미래에셋AI아세안펀드(-0.44%), 키움쿼터백글로벌EMP로보어드바이저펀드(-1.26%), 대신로보어드바이저펀드(-2.72%) 등도 국내 액티브 주식펀드의 평균수익률(-10.37%)을 크게 웃돌았다.
증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인간의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AI펀드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지는 모습이다. 미중 무역분쟁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등 글로벌 변동성이 장을 좌지우지하는 환경에서 오히려 AI의 운용 실력을 더 믿을 수 있다는 판단도 나온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외부변수가 많은 롤러코스터 장세에서는 특정 알고리즘에 기반해 컴퓨터가 자동으로 자문이나 운용서비스를 제공하는 로보어드바이저 운용 방식이 더 유리할 수 있다”며 “초기에는 AI가 자산배분에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종목을 직접 선택하는 등 한층 적극적인 운용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금융당국이 최근 핀테크 업체들의 투자일임 계약 체결 시 자기자본 기준을 40억원에서 15억원으로 대폭 낮춰준 점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핀테크 업체들이 로보어드바이저 펀드 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되면서 기존 운용사들과 경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실제 자산운용사들은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삼성자산운용은 AI 기반으로 금융데이터를 제공하는 딥서치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새로운 AI 상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은 인공지능 플랫폼을 독자 개발 중이고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분을 투자한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와 조인트벤처를 설립했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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