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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SKY캐슬'과 386 정치인들

최형욱 문화레저부장

여권 인사들, 20대 비하 발언

'공존의 가치 사수' 임무 망각

젊은이들 아픔 개인 탓 돌려

최형욱 부장




신문기자로 20여년간 밥벌이를 해온 입장에서 보면 말보다는 글이 더 남을 속이기 쉬운 수단이다. 퇴고를 몇 번 거듭하면 아는 척도, 고상한 척도, 정의로운 척도 그럴듯하게 보인다. 말은 다르다. 주워담을 수 없다 보니 사고의 깊이가 여지없이 까발려진다. 말주변이 없는 기자로서는 말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부럽기 짝이 없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의 교양을 청산유수처럼 쏟아내거나 따분한 소재를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는지.

다른 의미에서 일부 정치인들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정의와 공정, 희생과 헌신, 민족과 국가, 자유와 평등 등 낯뜨거운 단어들을 술술 주워 삼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실생활은 위장전입에 부동산 투기, 음주운전, 성폭력, 외유성 출장 등으로 도덕성을 의심받는 정치인이 적지 않다. 위선적으로 보이는데도 본인들은 정체성 혼란도 없는 모양이다. 공적인 자아와 사적인 자아, 혹은 가상의 자아와 실제의 자아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처럼 온갖 입바른 소리를 해댄다. 물론 이런 행태가 인간의 본성이라는 생각도 든다. 통상 사람은 자신에게 더 관대하기 마련이다. 타인에 대해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일련의 행동을 보고 사람 됨됨이를 판단하는 반면 본인은 과거 행동과 현재의 자아를 불연속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과거에 어떤 잘못을 했다면 당시 관행이나 상황 때문이며 자신의 인간성과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만 도덕을 외치면 사회는 오히려 퇴보한다. 전쟁이 났을 때 목숨을 걸 자신이 없다고 다들 평상시에 침묵한다면 정작 외침 때 나라는 누가 지키겠는가. 특히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보수든, 진보든 특정 진영의 대리인으로 사회적 가치를 사수하는 집단이다.

얼마 전 드라마 ‘SKY캐슬’ 열풍이 분 적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자신도 의사 부인이면서 바른말만 해대는 이수임(이태란 분)보다 자식에게 걸림돌이 될까 두려워 태생마저 숨기는 한서진(염정아 분)에게 시청자들이 공감했다는 점이다. 반면 정치인은 한서진처럼 ‘각자도생’ 아닌 이수임처럼 ‘공존’을 말해야 나라가 유지된다. 설령 자기 자식은 평소 이념과 달리 외국어고나 미국 유학을 보내거나 꼼수를 써서 의대·법대로 진학시키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바로 정치인이 공적인 자아 유지라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할 때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최고위원과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20대 지지율이 낮은 것이 전 정권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현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취직 안 된다고 ‘헬조선’이라 하지 말고 동남아로 가라”고 했다.



정부 정책 실패의 책임을 각자도생하지 못하는 20대 젊은이들에게로 돌린 것이다. 이들은 내심 지금의 20대들이 경제적 자립 능력을 잃어버린 와중에 개인주의로 파편화하면서 젊은 패기와 시대정신마저 잃어버린 한심한 세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집안에서 자기 자식에게나 할 잔소리를 공적인 공간에서 떠들어댄 것이다.

과거 경제개발과 가부장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세대는 386 남성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에 이어 정권도 다시 잡았다. 자신감이 너무 충만한 탓일까. 지금의 한국을 만드는 데 자신들도 일조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하다. 이들이 일부 위선적인 행동을 하지만 위선자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젊은 세대들의 아픔을 공유하지 못하는 꼰대가 돼버린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국가는 그것이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만이 구성원 모두에게 서로 방해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복과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기 때문에 존귀합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1985년 이른바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1심에서 실형을 받자 쓴 ‘항소이유서’의 한 대목이다. ‘항소하는 이유’라기보다는 기성세대를 향한 일종의 시국선언이다. 30여년이 흐른 지금, 386 정치인들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글귀이다. /choih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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