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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컬처] '시청률'이란 이름의 '면죄부'

■ '승리 사태' 키운 예능 방송

연예인 사생활 막연하게 미화 시키고

범죄 행위 예능 소재로 삼아 희화화

'사과 → 자숙 → 복귀' 패턴반복도 한몫

방송사 태도가 도덕 불감증 부채질

[요즘처럼 많은 연예인들이 한꺼번에 줄줄이 프로그램을 중도하차 하거나 아예 은퇴하는 경우는 없었다. 강남 클럽 버닝썬 사태로 시작된 이른바 ‘승리 게이트’는 나비효과를 부르며 연예계를 초토화시키고 있다.

가수 정준영은 빅뱅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 등이 있던 카카오톡 대화방에 성관계 영상을 몰래 유포한 혐의로 연예계 퇴출은 물론 사법처리 위기에 처했다. FT아일랜드 최종훈도 이 카톡방에 성관계 영상을 유포한 것으로 드러나 연예계 은퇴 선언을 했으며, 음주 단속 경찰관에게 뇌물을 주려 한 혐의(뇌물공여의사표시)로 입건됐다. 불똥은 차태현과 김준호에게도 튀었다. 이들은 정준영의 또 다른 카톡방에 내기 골프를 자랑하는 내용을 올렸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자 KBS2 ‘1박 2일’ 등 출연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잊을만한 하면 터지는 연예인들의 일탈에는 “내가 누군데”라는 특권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인기 스타로서 누리는 막강한 권력에 취해 사회적 의무는 뒷전이라는 것이다. 연예인들의 안하무인과 일탈에는 방송사들의 책임이 크다. 사고를 쳐도 사과한 뒤 면피성 자숙기간을 거치면 다시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는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연예인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진 것이다. 더구나 연예인의 사생활을 미화하고 범죄조차 예능의 소재로 삼아 희화화시키면서 도덕적 불감증을 부채질하고 있다.





◇예능이 미화시키는 연예인들 사생활= 이른바 ‘승리·정준영’ 사태 이후 MBC ‘라디오스타’는 지난 2016년과 2018년 방송된 정준영의 ‘황금폰’ 에피소드와 관련된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단했다. 2016년 방송에 출연한 지코가 정준영이 ‘황금폰’을 메신저 전용으로 사용하고, 마치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의 도감처럼 많은 여성들의 연락처가 있다고 말한 장면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여성을 상품에 비유해 비하하는데도 남성 진행자들과 출연자들은 웃기만 했다. 제작진이 미리 걸러내야 하는데도 뒤늦은 조치를 취한 것이다.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관찰 예능의 문제점이 도마 위에 올랐다. 관찰 카메라 형태는 시청자가 프로그램에 나오는 연예인을 가까운 친구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시청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커 출연자들의 윤리·도덕적인 부분을 더욱 엄밀하게 따져야 한다. 하지만 MBC ‘나 혼자 산다’에서는 승리가 해외 직원들과 사업 구상을 논의하는 모습이 그려지며 ‘위대한 승츠비’, ‘영 앤 리치(young and rich) CEO’라고 치켜세웠다.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도 발리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치스러운 일상을 즐기는 장면이 나왔다. 사업 홍보용으로 느껴지거나 위화감을 조성하는 내용인데도 프로그램이 스타의 ‘이미지 메이킹’에 활용된 셈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방송사들은 시청률과 재미에 집중하느라 관찰 예능 출연자의 인성이나 도덕성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MBC 예능 ‘무한도전’은 유재석 등 출연진의 철저한 자기관리 덕분에 더 큰 사랑을 받았다. 제작진도 촬영 전날 멤버들이 음주 여부를 검증하는 몰래카메라를 촬영하는 등 출연진에게 엄격한 자기관리를 간접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승리, 정준영 등의 사례를 보면)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웃고 떠드는 내용이 코미디가 아니라 현실을 반영한 다큐멘터리라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이제 더 이상 예능이 ‘재밌으면 된다’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슬그머니 복귀에다 개그 소재된 범죄행위= 2016년 9월 정준영이 당시 여자친구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로 수사를 받아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하지만 공영방송인 KBS는 단 4개월만에 정준영을 ‘1박 2일’에 복귀시켰다. 정준영의 공백 기간에도 수차례 그의 빠른 복귀를 바라는 장면을 담았다. 정작 복귀한 정준영은 이번 사태로 ‘1박 2일’ 프로그램 자체를 위기에 빠뜨렸다. 프로그램 폐지 압박이 커지자 ‘1박 2일’ 측은 지난 15일 “충분히 검증하지 못한 채 출연 재개를 결정한 점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제작 중단을 선언한 상태다.



개그맨 이수근은 2013년 불법도박 혐의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2년이 되지 않아 방송 복귀에 성공했다. 지난 2015년 tvN 예능 ‘신서유기’ 연출을 맡은 나영석 PD는 당시 “‘죄인’ 이수근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과거 범죄행위를 저질렀던 연예인들은 형식적인 자숙 기간을 거쳐 복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수 싸이, 배우 주지훈, 빅뱅 지드래곤과 탑 등 마약 사건에 연루됐던 인물들이나 성추문 논란이 일었던 배우 박시후와 가수 박유천 등도 결국 방송에 복귀했다.

상습 도박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던 방송인 김용만과 붐, 탁재훈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배우 윤제문, 가수 호란, 방송인 노홍철 등도 연예계로 돌아왔다. 방송인 신정환의 경우 2010년 해외 원정도박 및 뎅기열 거짓말 파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2017년 활동을 재개했다.

더 큰 문제는 복귀한 연예인의 범죄를 희화화하거나 예능 소재로 삼으려는 방송사의 태도다. ‘신서유기’에서는 이수근을 ‘상암동 베팅남’으로 표현하며 ‘도박필패’나 ‘패가망신’이라는 자막을 넣어 웃음을 유발하려 했다. 또 출연정지가 된 연예인의 복귀 시점이 팬들의 여론과 출연자의 인지도에 따라 제각각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엔 이들 연예인의 때 이른 복귀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도 차가워지고 있다. 지난해 JTBC ‘아는 형님’에 신정환이 출연하자 시청률이 크게 하락했다. 또 범죄행위를 저지른 연예인들에 대한 방송 출연 금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특히 이번 ‘승리·정준영 사태’는 단순히 한 연예인의 일탈이 아닌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타격을 주면서 제도적 보완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 평론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예능 방송 전반의 변화도 필요하다”며 “출연진에 대한 꼼꼼한 신상조회나 방송 전 계약서를 통해 출연자의 일탈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청률에 민감한 제작진이 아닌 외부 인사가 참가한다면 출연자 검증 시스템이 더 철저해질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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