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 김수근이 추구했던 공간 개념대로 설계하면 아무도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 이런 식이라면 남겨진 건물들도 다 부수고 돈 되는 건물로 바꿀 거예요. 김수근의 건축 유산이 남아 있으려면 주민들의 합리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건축가 김수근과 올림픽주경기장 설계작업을 함께하는 등 오랜 인연을 맺어 온 김남현(사진) 공간건축 고문은 김수근의 가치와 유산이 보존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지난 1970~1980년대에 주로 활동한 김수근의 건축물들은 노후화·재개발 등 이유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그는 “‘우촌장’이라고 거실에 연결된 방들이 각자 층이 다른 형태의 건물이 있었다. 그런데 집주인이 바뀐 뒤 건물을 부수고 연립주택으로 바꿔 지금은 사라졌다”며 “건물의 가치가 ‘돈’이라면 이렇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고문은 “건축물은 용도가 있어야 하는데 옛날의 쓰임새와 지금의 쓰임새는 다르다. 옛날 것을 그냥 보존만 한다면 용도는 폐기되고 껍데기만 유지하는 ‘골동품’이 된다”며 “프랑스 파리의 집들처럼 현대에 맞게 안을 뜯어고치면 살아남을 수 있다. 용도가 바뀌는 대로 적응하는 것인데 이렇게 남기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고문은 1971년 공간건축에 입사한 뒤 김수근이 세상을 떠난 1986년까지 15년간 인연을 맺었다. 이후 미국 유학을 떠나 다방면에서 활동하다 공간건축 고문으로 재합류했다. 그는 “김수근이 워커힐호텔 프로젝트 참여를 계기로 김종필과 연을 맺었다. 이후 장성들과 일을 하다 보니 술을 너무 마시게 됐고 결국 간 경화로 숨을 거뒀다”며 “군인들이 김수근을 망쳤다고 생각한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김수근의 정신’은 김 고문을 비롯한 공간건축의 많은 동료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김 고문은 “김수근의 정신은 제자들을 통해 계승·발전되고 있다”며 “‘공간’은 다른 사무실과 달리 제자들이 많다. 많은 제자들이 공간을 거쳐 건축계 전반에 많이 분포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연히 제자들은 ‘김수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부단히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난다”며 “누가 김수근의 정신을 어떻게 이어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체질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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