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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휴대폰 생태계] 자동차 이어 휴대폰까지...부품사 위기 제조업 전반으로 번지나

LG 계속된 적자에 상당수 협력사 이미 경영난 허덕

부품사 R&D 소홀해 화 자초...삼성 벤더도 위기감

박영선 "부품사 피해 크면 긴급경영 자금 등 편성"





LG전자가 연내 평택공장의 휴대폰 생산물량을 베트남 하이퐁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29일 LG디지털파크가 자리한 경기도 평택시 평택진위일반산업단지 일대가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고(사진 위) LG전자에 부품을 공급하다가 청산절차를 밟고 있는 서울 금천구의 한 휴대폰부품 업체 정문에는 ‘임대문의’라는 현수막이 휘날리고 있다(사진 아래). /오승현·심우일기자


LG전자가 국내 휴대폰 생산 라인을 재가동하기는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대기업과 부품 업체로 이어지는 ‘휴대폰 산업 생태계’가 사실상 붕괴했기 때문이다. 폐업 수순을 밟고 있는 A사에 이어 다른 부품 업체로의 연쇄파산도 불가피한 것으로 점쳐진다. 이번 사태로 대기업과 중소 납품 업체가 긴밀하게 협력하며 지탱했던 제조업의 생산동력이 쇠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제조업 전반의 위기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휴대폰부품 업체들로 구성된 한국방송통신산업협동조합의 주대철 이사장은 “LG전자가 국내 생산을 중단하면서 휴대폰부품 업체 중 폐업하는 곳이 잇따를 수 있다”며 “국내 주력 산업인 자동차에 이어 휴대폰까지 무너지면서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해왔던 제조업 부품 생태계 자체가 망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 이사장의 탄식처럼 적자 누적에다 휴대폰 판매량 급감으로 탈출구를 찾던 LG전자의 ‘국내 생산 포기 결정’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국내 LG전자의 주요 휴대폰부품 업체 수는 전성기에 비해 최대 15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으로 추정된다. LG전자의 국내 물량이 급격하게 감소한 탓이다. 현재 LG전자의 국내 생산량은 전체 생산량의 15%에 불과하다. 해마다 물량이 줄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산 고리’에서 떨어져 나간 업체들이 늘어났고 베트남이나 인도 등 해외공장으로 이전한 곳들도 적지 않다. 부품 업체를 운영하는 이현수(가명) 대표는 “LG전자의 폴더폰이 잘나갈 때는 협력사가 1,000곳에 달했지만 지금은 200~300개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상당수 휴대폰부품 업체들이 납품물량 급감으로 활로를 찾지 못하는데다 누적되는 적자로 경영난을 겪으면서 폐업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10년째 LG전자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C사 관계자는 “LG전자의 휴대폰 사업이 저조하면서 우리 회사도 최근 2년간 적자가 났다”며 “위탁 생산업체(EMS)만 따져도 지난해까지 6곳이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올 들어서는 2~3곳만 남았다”고 전했다. LG전자의 국내 물량에 대한 의존도가 큰 업체일수록 파산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특히 이번 사태처럼 대기업인 원청 업체의 생산 중단은 경영이 정상적으로 가동하던 부품 업체까지 잠재적인 경영위기로 내몰게 된다. 완성품 업체의 판매 부진이 본격화되면 부품 업체는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실적이 나빠진다. 이후 금융권의 대출회수 압박이나 신규 대출 중단을 맞을 수 있고, 결국 자금난에 몰려 파산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휴대폰 산업 자체의 자생적인 ‘부품 생태계’가 조성되지 않았다는 뼈아픈 반성도 나온다. 휴대폰은 신제품 출시 주기가 다른 업종에 비해 빠른 편이다. 영세한 부품 업체 입장에서 이 같은 속도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게다가 원청이 당초 약속했던 물량(일명 기획물량)을 발주하지 않으면 부품 업체는 이 물량을 위해 쓴 투자뿐만 아니라 재고부담까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이는 모든 산업에 공통적인 문제일 수 있지만 휴대폰의 경우 최근 10년 가까이 우리 기업이 선점했던 만큼 부품 업체들도 원청 납품에 그치지 않고 공격적으로 연구개발(R&D)에 힘써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케팅 비용이 큰 휴대폰 시장 특성상 후발주자인 LG전자의 저가 마케팅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LG전자가 ‘G7’을 출시했을 당시 벌였던 대대적인 마케팅을 꼽을 수 있다. 부품 업계의 한 관계자는 “G7의 저가 마케팅으로 인해 하청 업체가 단가 인하 압박을 받았다”며 “출고가를 낮추기 위해 단가를 내려 부품 업체의 수익성이 악화됐고, 판매실적도 저조해 부품 업체들이 추가적인 압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경우 1,000만대를 판매한다고 계획하면 재고물량을 모두 떠안고서라도 책임져 주지만 LG전자는 하청 업체에 대부분의 재고를 떠넘겼고, 이는 고스란히 부품 업체의 손실로 잡힌다”고 꼬집었다. 이런 이유로 R&D 등을 통해 신기술을 개발할 여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D사의 정우선(가명) 대표는 “LG전자 부품 업체들은 대부분 영세한 형편이라 자생력을 갖추지 못했다”며 “사업 다각화라는 말은 쉽지만 기업의 기술력이 출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LG전자발 휴대폰부품 산업의 위기감은 삼성전자 부품 업체들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1차 벤더 중에서도 파산한 곳이 있다’는 이야기가 업계에서 떠도는 등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2차 벤더인 E사 관계자는 “요즈음 베트남 쪽도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원청 측에서 주문하는 생산량이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고 전했다. 1차 벤더인 F사 관계자도 “아직까지 우리 회사의 베트남 물량에 큰 변화가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삼성전자가 가성비를 높이기 위해 부품 수를 줄이고 있는데 가성비가 올라가면 벤더에 보장된 수익 규모가 줄게 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업계에서는 휴대폰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안으로 삼성전자가 LG전자 벤더를 수용하는 방안을 꼽는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일반적으로 전속거래 비중이 80%에 달할 만큼 하청 업체는 원청 업체에 종속돼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원청과 하청은 성장과 몰락을 함께하겠다고 약속한 ‘운명공동체’다. 이 대표는 “삼성전자 물량을 받겠다는 의미는 LG전자와 관계를 끊겠다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제조업에 대한 우려를 더욱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제조업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에다 불경기, 주력 산업 침체 등으로 진퇴양난에 있다. 김종기 산업연구원 신산업실장은 “국내 휴대폰 산업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양대 축이 돼 이끌어왔다”며 “LG전자의 생산 중단으로 인해 산업 기반과 경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정부는 LG전자의 국내 휴대폰 생산 중단이 부품 업체에 미칠 영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최근 LG전자의 국내 생산 중단 소식을 접하자 “산업통상자원부와 부품 업체 피해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며 “업체 피해가 심각하면 긴급경영안정자금을 편성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양종곤· 심우일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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