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위해 아파트에서 옥상과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아이가 목줄 없이 신 나게 뛰어노는 걸 보니 다신 못 돌아갈 것 같아요.” (네이버 카페 ‘강사모’)
“원룸이라 집이 좁아 욕실에 화장실을 두고 캣폴을 장만해 방에 설치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결국 고양님 집에 얹혀사는 집사 신세가 됐습니다.” (네이버 카페 ‘고양이를 부탁해’)
반려동물 양육인구 1,000만 시대, ‘펫(반려동물)’이 주거환경과 문화를 바꾸고 있다.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는 일명 ‘펫팸족(pet+family族)’이 투자와 소비로 이어지고 개·고양이 같은 동물과 사람이 공생할 수 있는 주거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다. 반려동물 동반가구의 ‘니즈’를 겨냥한 기업들이 반려동물을 위한 주거환경 설계와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집사님 입주하세요” 도심 공동주택 출현=최근 건축·건설 업계에서는 반려동물 동반가구를 위한 주택 공급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렌털주택인 ‘트리하우스’가 제공하는 거주공간 콘셉트 중 하나는 ‘캣 라이프(cat life)’다. 트리하우스 측은 이를 ‘고양이와 집사를 위한 특화 가구’라고 소개한다. 캣 라이프는 캣타워(고양이가 오르내릴 수 있는 수직형 시설물)와 캣워크(고양이의 이동을 위해 높은 곳에 설치하는 선반) 역할을 하는 창틀 선반과 고양이 화장실을 위한 공간이 고려된 점이 특징이다. 또 지상 1층 공용공간에는 반려동물을 위한 샤워실도 있다. 높은 공간을 좋아하는 고양이의 특성을 설계 단계에서부터 고려한 것이다. 주택을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반려묘와 주인의 생활양식을 염두에 두고 구성됐다. 한 달 임대료가 119만~159만원 수준으로 낮지 않지만 젊은 반려동물 동반가구를 중심으로 반응이 뜨겁다.
◇반려인들 모여 사는 전원주택 단지도 인기=경기 남양주에는 아예 반려인들을 위한 반려견 전용 주택단지가 들어섰다. ‘반려견주택연구소’에서 조성한 남양주 ‘펫 빌리지’는 애견인들을 위한 전원주택 단지다. 입주를 원하는 애견인은 택지를 개별적으로 분양받아 자신이 키우는 개의 특성에 맞춘 집을 지을 수 있다. 경기 용인시, 서울 남가좌동 등지에 반려동물 특화 주택을 만들어온 박준영 반려견주택연구소 소장은 “슬개골 탈구를 예방하기 위해 바닥에 미끄럼 방지 처리를 한다든가, 반려동물들이 화장실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펫 전용 문을 만든다든가 하는 사소한 배려들이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분양을 마친 경기 용인시 이동면 소재 펫 빌리지 내 주택은 시세가 3억원이 넘지만 반려인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아파트도 이제는 반려동물 ‘웰컴’=이전에는 ‘금견(禁犬)’ 구역으로 인식됐던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 단지도 반려인을 배려한 단지 내 시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추세다. 현대건설이 지난달 분양에 나선 서울 일원동 ‘디에이치 포레센트(62가구)’는 현관 입구에 소형 세면대가 적용돼 반려동물들을 산책시킨 후에 간단한 세척이 가능하게 디자인됐다. 또 반려동물 물품을 현관 내에 보관하도록 설계돼 반려인을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단지형 오피스텔인 안강건설의 ‘김포 더 럭스나인’은 전용면적 26㎡ 일부 가구에 ‘위드펫(with pet) 타입’을 적용했다. 반려동물을 위한 인테리어는 물론 사물인터넷(IoT)에 기반한 반려동물 전용 ‘펫 스테이션’ 서비스도 도입할 계획이다. 외부에서 인터넷을 통해 원격으로 가전을 제어해 반려동물을 두고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들을 겨냥한 서비스다.
이 밖에 옥상에 반려동물 놀이터를 설치하는 경우(동광건설 ‘수원 호매실 동광뷰엘’)나 반려동물 공원을 조성하는 경우(태영건설 ‘서면 데시앙 스튜디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젊은 직장인이나 1~2인으로 구성된 소형 세대를 위해 특정 층이나 동을 구분하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아픈 펫 위해 ‘병세권’으로 이사도 감행=“고양이들 병원 때문에 이사를 결정했어요.” 구독자 39만명을 보유한 인기 고양이 유튜버 ‘김메주와 고양이들’은 지난 1월 영상을 통해 고양이의 병원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발치 수술 이후 주기적으로 상태를 검진받아야 하는데 반려묘가 이동시간이 길어져 스트레스를 받자 동물병원 근처로 이사를 결정한 것이다. 이처럼 펫팸족은 주거지를 고를 때도 반려동물의 복지를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다.
공동주택 단지 내 반려동물 관련 시설이 입주해 있으면 펫팸족의 ‘가산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신세계건설이 울산 중구에 건설 중인 ‘빌리브 울산(567세대)’은 이마트가 직접 운영하는 펫숍의 반려동물 케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경기 고양시에 분양할 예정인 ‘힐스테이트 삼송역 스칸센(2,513실)’ 단지도 반려동물이 운동할 수 있는 펫 케어센터를 마련할 계획이다.
◇반려동물 주거환경 기준 마련해야=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펫 하우스’는 이미 하나의 주거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은 1997년부터 반려동물 주택 관련 관리규약을 법적으로 도입해 반려가구의 주거환경을 규정하고 있다. 도쿄 사이타마현에 위치한 한 ‘펫 프렌들리(반려동물 친화)’ 단지를 살펴보면 펫 전용 구역을 갖추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반려동물들이 미용관리를 받을 수 있는 ‘살롱’도 있다. 또 각 동 1층에는 산책 후 반려동물을 씻길 수 있는 세면대를 설치했고 건물을 설계하는 과정에서도 방음과 방취를 강화했다. 일본에서는 이 같은 반려동물 임대주택 비중이 높고 임대료도 15% 정도 높게 형성돼 있다.
한국도 일본처럼 반려동물 동반가구가 늘어나며 ‘층견소음’이나 이웃과의 갈등이 증가하면서 반려인구가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주택 공급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박 소장은 “바닥에 미끄럼 방지 처리를 한다든가 환기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은 반려동물을 위한 배려일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며 “펫 프렌들리한 주거환경은 결국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공생’을 위한다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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