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이 해외에 남겨둔 스위스 예금 채권을 상속받고도 이를 세무 당국에 신고하지 않아 재판을 받게 된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형제들이 혐의를 인정하고 법원에 선처를 호소했다. 재산 문제로 다퉜던 조양호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한 지 한달 여만에 열린 재판에 출석한 형제들은 “형제 간에 다툴 일도 아닌 일로 다퉜는데 모든 것이 아쉽고 허무하다”는 소회를 밝혔다.
조남호 전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은 20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2단독 김유정 판사 심리로 진행된 상속재산 미신고 혐의 결심공판에 출석했다. 고 조양호 회장을 비롯 형제는 선친이자 한진그룹 창업자인 고(故) 조중훈 회장이 지난 2002년 사망하면서 총 450억원에 이르는 스위스 예금 채권을 상속받았으나 이를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혐의(국제조세조정에관한법률 위반)를 받는다.
조양호 회장과 남호·정호 형제는 부친 사후에 상속을 두고 서로 소송전을 벌이며 사이가 틀어졌었다. 재판에 참석한 조 전 회장은 “그동안 형제간 다툴 일도 아닌 일로 다퉜는데 조양호 회장이 사망하고 나니 모든 것이 아쉽고 허무하다”며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회장도 “저 역시 같은 마음이고 선처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조씨 형제의 변호인 측은 이날 재판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지만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등의 이유로 선처를 호소했다. 또 “2002년 선친인 조중훈 회장 별세 이후 유언에 대한 유·무효 분쟁이 시작돼 신고를 할 수 없었다”면서 “지난해부터 상속세를 납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이들 형제에 대해 각 벌금 20억원의 약식 명령을 청구했다. 약식 명령은 벌금을 물릴 수 있는 비교적 경미한 사건에 한해 정식 재판을 열지 않고 서류만 검토한 뒤 형벌을 정하는 것이다. 남부지법은 이 사건을 심리한 뒤 정식 재판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사건을 통상 재판에 넘겼다. 조씨 형제에 대한 1심 선고는 다음 달 26일에 열린다./이희조기자 l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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