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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기생충'] 멀리서 보면 공생, 가까이 보면 기생…'한국사회 민낯' 들추다

빈부격차 심한 '두가정의 충돌'

깔끔한 연출로 '희비극' 버무려

"기생않고 공생하는 삶 가능한가"

이 시대에 '뼈아픈 질문' 내던져

영화 ‘기생충’의 스틸 컷.




봉준호 감독은 언제나 힘없고 하자가 많은 인물에 대한 애정을 작품으로 표현해왔다. 의욕만 앞서는 어리숙한 형사, 쓸데없는 집착으로 일을 키우는 아파트 관리실 직원, 나사가 빠진 듯 실실거리는 매점 주인이 그의 전작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었다. 이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은 어쩔 수 없이 ‘가진 것 많고 힘센 자’를 묘사할 때 상투적인 시선을 노출하기도 했다. ‘괴물’의 정부 관료, ‘마더’의 변호사, ‘옥자’의 대기업 회장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주인공 캐릭터를 향한 사랑이 깊은 나머지 ‘나쁜 놈의 전형’처럼 묘사되는 이들 인물은 봉준호 영화에 사소한 흠집을 냈다.

오는 30일 개봉하는 ‘기생충’은 전작들의 자잘한 결점을 가뿐히 상쇄하면서 한국영화가 일찍이 가닿지 못한 봉우리로 올라선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품은 작품답게 모든 캐릭터는 수심을 가늠하기 힘든 강처럼 깊고, 이야기는 갓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시종일관 펄떡이며 대단한 에너지를 분출한다.

빈부격차가 극명한 현대사회의 계급충돌 양상을 다룬 ‘기생충’은 백수 가족의 장남이 부잣집 딸내미의 과외선생 면접을 보러 가면서 시작한다. 장남 기우를 시작으로 가장인 기택과 아내 충숙, 딸 기정까지 백수 가족의 구성원 모두 부잣집에 성공적으로 ‘취업’한다. 기택의 가족이 부잣집에 완벽하게 기생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예기치 않은 사건이 희비극의 터치로 펼쳐진다.

영화 ‘기생충’의 스틸 컷.


‘기생충’의 서사는 봉준호의 다른 어떤 전작보다 기이하고 엉뚱한 방식으로 흘러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자국 하나 없이 깔끔한 이음새와 논리적 명쾌함 덕분에 관객은 매 순간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장면을 맞이하게 된다. 감독은 사회학자의 냉철한 지성과 동서고금의 고전을 섭렵한 영화광의 감성을 장착한 채 세상의 어두운 그늘을 혼종 장르의 분위기로 실어나른다. 인디언·바퀴벌레·냄새 등 다양한 상징과 은유도 영화의 결을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든다.

‘기생충’에서 끔찍한 파국은 모두 다 같은 사람일진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으로부터 모욕을 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벌어진다. 봉준호는 영화의 이런 결정적인 고비에 부감 쇼트를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이를 통해 마치 하늘에서 신이 내려다보듯, 인물들이 마주하는 가여운 비극을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보듬는다. “인간의 존엄에 대한 영화”라는 감독의 말은 작품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 설명이다.



‘기생충’은 봉준호 월드의 ‘결정판’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경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한 영화다. ‘플란다스의 개’ ‘괴물’ ‘설국열차’ 등 전작의 그림자가 언뜻언뜻 스치지만, 봉준호는 끝내 자신이 만들었던 영화들로부터 저 멀리 달아나면서 어디서도 보지 못한 작품을 창조했다. 스스로 쌓아올린 작품 세계를 훌쩍 초월해 또 다른 단계로 진입한 이 걸출한 예술가는 생김새도, 능력도, 재능도 저마다 다른 사람이 모여 사는 이 세상에서 ‘과연 기생하지 않고 공생하는 삶이란 가능한 것인가’를 뼈아프게 질문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고르게 훌륭하다. 송강호는 언제나 그렇듯 발군이며 백치미가 있는 부잣집 아내 역할을 맡은 조여정은 이제야 맞춤형 캐릭터를 만났다는 듯 활기차게 스크린을 누빈다. 주·조연 배우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기생충’은 앙상블 영화의 가장 모범적인 선례 가운데 하나로 한국영화사에 남을 것이다.

영화 잡지에서 흔히 쓰는 방식인 ‘20자평’으로 이 작품의 감상을 표현한다면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재밌다. 웃기다. 무섭다. 끔찍하다. 슬프다. 눈물이 난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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