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 단백질의 응집체인 아밀로이드가 심장에 침투해 심장의 장애를 일으키는 트랜스티레틴 아밀로이드 심근병증(ATTR-CM)은 전 세계 유병률 10만명 당 1명으로 극히 드물지만 발병 3년 내 환자의 절반이 사망할 정도로 무서운 질환이다. 최근 ATTR-CM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 ‘빈다켈’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얻었지만 대다수 환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미국 기준 1년 복약 비용이 22만5,000달러(약 2억6,379만원)이기 때문이다.
#유전자 돌연변이로 발생하는 유전질환인 척수성 근위축증(SMA)은 출생 직후 발병할 경우 2년 이내 사망할 정도로 위험한 질환이다. 신생아 2만명 당 1명 정도로 발병한다. 현재 치료제로 바이오젠의 ‘스핀라자’가 출시됐고, 노바티스의 ‘졸젠스마’가 5월 중 출시될 예정이다. 이들 치료제 역시 문제는 가격이다. 최초 4회, 이후 4개월마다 한번 씩 평생 맞아야 하는 스핀라자의 한 병당 가격은 비급여 기준 1억2,222만원이다. 졸젠스마는 평생 1회만 맞으면 돼 복약 편의성이 훨씬 개선됐다. 하지만 더 비싸다. 업계는 졸젠스마의 가격으로 200만 달러(약 22억원)를 예상하고 있다.
환자 수가 적어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고아약(orphan drug)’으로 불릴 정도로 기피 상품이었던 희귀의약품이 임상시험 규모 축소, 세제 및 연구개발(R&D) 비용 지원 등의 정책으로 제약사의 핵심 파이프라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각국 정부는 이 같은 투자에 환영하면서도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제약사들은 환자가 적은 만큼 개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비싼 가격을 책정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RNA치료제, 유전자치료제, CAR-T(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 치료제 등 첨단 의약품들이 잇따라 개발되며 그동안 불치병으로 불렸던 희귀질환의 치료제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들 치료제는 유전공학적인 조작을 통해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한번에 바로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학계의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비싼 약가다. 이들 약은 1회 투약에 수천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요구한다. 세계 최초 CAR-T세포 유전치료제인 킴리아는 기존 방법으로 치료할 수 없었던 급성백혈병 환자의 완치율을 80%로 끌어올려 기적의 항암제라는 찬사를 받지만, 1회 투약 비용이 5억원에 달한다. 첫 진단 후 3년 내 환자 80%가 사망하거나 말기 신부전으로 진행되는 비정형 용혈성 요독증후군의 유일한 치료제 솔리리스는 1년 투약 비용이 6억원으로 국내에서 가장 비싼 약으로 꼽힌다.
이 같은 비싼 약가는 미국 내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중산층 이상은 각자가 가입한 건강보험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들은 메디케이드(빈민층 대상 의료 지원 제도)를 이용해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들 제약사를 바라보는 미국 내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헬스케어 경제학자인 레나 콘티 보스턴대 교수는 “가족이나 시스템을 파산시키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 보건의료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미국에서는 제약회사들이 TV 광고에서 약을 광고할 때 가격을 제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이 7월부터 시행된다.
정부에서도 이 같은 비싼 약가에 대해 고민이 깊다. 해외에서 개발한 혁신 신약을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올렸지만, 지나치게 까다로운 기준으로 실효성이 낮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솔리리스의 경우 건보 적용을 받기 위해 ‘신장 손상’ ‘효소 활성 10% 이상’ ‘대변검사 결과 음성’이 필요하다. 스핀라자는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로서 ‘5번 염색체 돌연변이 유전자의 결손 또는 변이의 유전자적 진단’ ‘만 3세 이하에 SMA 관련 임상 증상 및 징후 발현’ ‘영구적 인공호흡기 비사용’의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 조건을 만족해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사전승인위원회 심사가 남아있다. 조건을 모두 통과했지만 심평원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환자들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의학적으로 필요한 치료는 모두 보험적용을 한다는 게 정부의 기본 원칙”이라고 강조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한정된 재정 때문에 보험 적용을 위한 확실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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