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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도시-성수연방] 낡은 공간에 불어넣은 생명력...'핫플' 된 성수동 화학공장

성수연방에는 요즘 가장 인기있는 띵굴스토어를 비롯한 상점이 들어서있다. 상점에는 건축물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인테리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사진제공=푸하하하프렌즈, 석준기 사진작가




붉다기보다 분홍빛에 가까운 벽돌과 두터운 기둥이 한가운데 뜰을 둘러싸고 서 있다. 뜰에서는 젊은이들이 따스한 볕을 쬐며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열주와 너른 복도 뒤에는 요즘 가장 힙한 상점들이 칸칸이 들어섰다. 지난 1970년대부터 서울 성동구 성수동 골목을 지키던 화학 공장은 이렇게 ‘성수연방’으로 다시 태어났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낡은 건축물을 리노베이션할 때 항상 마주하는 질문이다. 앞선 성수동의 많은 붉은 벽돌 건물처럼 거친 흔적을 껍데기로 남긴 채 문화예술 공간, 카페, 식당으로 만드는 해법은 이제 많다 못해 진부하기까지 하다. 성수연방 프로젝트는 ‘2019년 젊은 건축가상’을 받은 ‘푸하하하프렌즈(FHHH·푸하하하)’가 맡았다. 진부함에 질색하고 개성이 넘쳐 흐르는 건축가들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낡은 공장에 숨을 불어넣었을까.



[중세의 길드를 꿈꾸다]

이미지만 소비하는 리모델링 대신

생산과 소비 함께하는 공간 탈바꿈

성수연방이 성수동의 여느 리노베이션 건물과 다른 점은 바로 생산 시설, 즉 공장을 남겼다는 것이다. 공장 분위기를 콘셉트로만 남긴 건축물이 아니라 제조 생산 시설이라는 프로그램도 이어받았다. 1974년 ‘대명케미칼’의 화학공장으로 시작된 이 건물은 줄곧 도심 속 제조 시설이었다. 과거 생산자를 위한 건물에 상점을 넣어 소비자를 받아들였고 여전히 생산자를 위해 공간을 계획했다는 것이 설계자의 설명이다.

한승재 푸하하하 소장은 “맨 처음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생산 시설과 판매 시설이 뒤섞인 중세 길드의 모습을 떠올렸다”면서 “길드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폐쇄적인 강제성이 있으면서도 각자 자생해나가는 정체성을 지키는 국가 ‘연방’이라는 철학을 꿈꾸니 성수연방이라는 이름이 금세 지어졌다”고 말했다.

1층은 대부분 상점이지만 2층에는 팜프레시 팩토리, 인덱스카라멜 팩토리 등이 있다. 상점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같은 건물에서 바로 생산도 겸하는 것이다. 실제 건축개요를 봐도 연면적의 3분의1가량은 용도가 공장으로 돼 있다. 한 건물에서 물건을 만들고 사고팔고 중정에 다양한 사람이 모이도록 상상했다.

물론 설계자가 꿈꿨던 것처럼 모든 상점이 협동조합처럼 비슷한 콘셉트의 제복이나 상호를 갖지는 못했다. 하지만 도심에 남은 제조업을 연장시켜 프로그램까지 남기는 방식은 전에 벽돌조 공장의 껍데기만 남긴 채 이미지만 소비하던 데서 한 차원 더 나아간 접근법이다.

2층과 3층 발코니 복도는 모두 장애인 엘리베이터로 연결 돼 중정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동선을 계획했다. /사진제공=푸하하하프렌즈, 석준기 사진작가




1층 중정을 따라 늘어선 두꺼운 분홍빛의 기둥은 일종의 모뉴먼트로 건축물의 기억을 잇는 건축적 조형물이다. /사진제공=푸하하하프렌즈, 석준기 사진작가


[기억을 연장시킨 리노베이션]

1층 복도에 넓고 굵은 분홍빛기둥

수십년 뒤 용도까지 고려해 디자인

공장 프로그램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더욱 중요해진 것이 구조 보강이었다. 그냥 사람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육중한 공장 설비를 40년 된 낡은 건축물에 들여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골조 강화 차원을 넘어서 아예 새로운 구조 안전을 위해 전단벽과 보를 추가하고 메인 기둥 밑에는 지하 19m 깊이까지 마이크로 파일을 심었다. 단열, 구조 안전, 소방 등 건축물의 성능을 리노베이션하는 기본을 재정립했다. 꾸미기보다 낡은 건축물의 생명을 연장시켜 더 튼튼하게 되살리는 것에 중점을 뒀다.

건축물의 기능을 강화하다 보니 본래 이 건물이 갖고 있던 골조와 건물 비례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키울 수 있었다. 건물의 전체 색감을 보면 붉은색은 대부분 기존에 있던 부분이고 회색 콘크리트는 새로 덧붙인 것들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상징은 분홍빛의 넓고 굵은 기둥과 이 위를 지나는 복도다. 1층에 나란히 배열된 분홍빛 기둥은 구조 성능보다 더 굵게 덧댄 일종의 건축 조형물이다. 한 소장은 “현재는 상업 시설이지만 수십 년 후 이 건물이 어떤 용도로 쓰일지 몰라도 끝까지 남는 것은 건축물 자체의 상징적 구조”라며 “분홍빛의 넓고 수직으로 뻗은 기둥이 일종의 모뉴먼트로 오래 기억되는 것을 의도했다”고 말했다. 넓은 기둥은 일정하게 나눠진 건물 입면에 규칙성을 주고 건물의 비례를 더 살렸다.

분홍빛 기둥 위로는 1.4m 너비의 발코니 복도가 중정을 둘러싸고 있다. 2·3층 양 끝에 두 동을 잇는 다리를 한 군데씩 만들어 동선을 구성했다. 회색 콘크리트 재질인 이 발코니는 방문객을 끌어들이기도 하지만 공장에 맞게 수레가 다닐 정도로 넓게 만든 생산자의 동선이기도 하다. 동선은 화물용으로도 쓰는 장애인 엘리베이터로 이어지는데 이는 용적률에 포함되지 않아 땅을 최대로 활용했다.

성수연방은 낡은 기존 건축물을 모두 새 것으로 다 고치지 않고 오래되고 거친 분위기를 남겨뒀다. 건축적 어휘는 강력하되 배경으로 남아 프로그램과 이름이 바뀌어도 건축물은 기억되도록 의도했다. /사진제공=푸하하하프렌즈, 석준기 사진작가


푸하하하프렌즈는 1층 띵굴스토어와, 2층 아크앤북 인테리어도 맡아 기존 공장 건축물의 남겨진 부분을 보존하면서 상업성을 높을 수 있는 디자인을 선보였다. /사진제공=푸하하하프렌즈, 석준기 사진작가


[상업성과 정체성의 융합]

상점 들어서도 기억 사라지지 않게

인테리어 가이드라인도 일일이 제공

성수연방은 질감과 색감에 더해 골조까지 강력한 건축적 어휘 때문에 아무리 상업화돼도 건물 자체의 정체성이 쉽게 손상되지는 않는다. 리노베이션을 했음에도 어떤 기억을 가진 장소와 건물이었는지 정체성이 사라지지 않도록 디자인했다. 그렇기 때문에 설계자가 수익형 임대 건물, 즉 상업 시설이라는 현재의 용도와 분투한 것도 사실이다.

한 소장은 “중정에 북적북적하게 사람들이 모여들어야 하는데 그 자리에 임시 파빌리온이 버티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며 “그래도 틈틈이 주말에 야채장터가 열리는 등 그 안에서 사용자가 살아 나가는 모습도 긍정적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푸하하하는 상점에 인테리어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1층 띵굴 스토어나 2층 아크앤북은 직접 인테리어하기도 했다. 가이드라인에 건물의 통일감 있는 디자인을 해칠 수 있는 부분은 ‘변경 불가’로 안내했다. 그러면서도 그 외의 요소는 사용자의 자율성에 맡겨둠으로써 과거 기억의 틀과 현재의 다양한 삶이 섞일 수 있도록 건축물은 다시 배경으로 남겼다. 튼튼하게 다시 지어진 성수연방이 앞으로 어떻게 쓰여나갈지 기대되는 이유다./이재명기자 nowlight@sedaily.com

A동 입면, 수직으로 규칙적으로 뻗어있는 분홍빛 기둥이 건물의 비례를 완성 시킨다. /사진제공=푸하하하프렌즈, 석준기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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