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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미국 보수주의가 실패한 이유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진보적 의제·복지정책 부작용에

공화당 수십년간 비판 쏟았지만

오히려 진보정책이 美 번영 불러

지지자 실망과 정치적 혼란 초래

트럼프 포퓰리즘에 공화당 내준꼴

파리드 자카리아




오늘날 보수주의가 처한 심각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와 원인을 명확하게 분석한 책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과거 수십년 동안 보수주의는 서방세계의 지배적인 이념이었고 최대 지지자는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수주의 이념은 속절없이 스러졌다. 도널드 트럼프의 포퓰리즘이 공화당을 장악했고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열기가 영국 보수주의적 지도자들을 사로잡았다.

이처럼 혼탁한 상황에서 조지 F 윌의 저서 ‘보수적 감성(The Conservative Sensibility)’이 발간됐다. 보수주의 이상을 상징하는 인물이자 사려 깊고 박식한 윌은 필자에게는 오랜 존경의 대상이었다. 필자의 대학 시절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이자 일요일 아침 TV 시사 프로그램 정규 해설가로 활동하면서 몇 권의 책까지 써냈던 그는 미국 정계와 지식인 사회의 붙박이 터줏대감이었다. 대학 학보 편집장이었던 필자는 어느 날 용기를 내 윌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편지를 썼고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벌써 35년 전의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윌에 대한 존경심에는 변함이 없다. 당연히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보수적 감성’을 집어 들었다. 예상대로 그의 책은 대단히 현학적이었다. 곳곳에 역사적 예를 풍성하게 깔아놓았고 유명 정치인들과 시인들의 수사와 시 구절을 여기저기에 효과적으로 배치했다. 윌은 그가 신봉하는 이념인 보수주의를 개괄적으로 설명하려 시도했다.

그에게 미국의 보수주의는 유럽의 보수주의와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다. 윌의 견해에 따르면 “유럽의 보수주의는 왕좌와 제단, 민족주의 향수, 불합리성과 부족의식에 기원을 두고 있고 지금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유럽 국가들은 역사에 의해 만들어졌고 미국은 철학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대처의 말을 인용하며 “결국 미국의 보수주의란 미국 국부들의 독창적인 철학, 즉 제한된 정부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추구하는 고전적 자유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윌은 보수주의의 대척점에 우드로 윌슨이 제창하고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법으로 다듬어 낸 진보주의(progressivism)가 있다고 주장한다. 남북전쟁 이후 국가산업화 과정에서 태어난 진보주의는 정부에 의해 시행되는 집단적 행동을 요구하며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또한 도덕적으로 개인들을 가장 융성하게 만들어준다. 윌은 진보주의가 미국 건국의 이상을 갉아먹었고 미국적 정신을 쇠약하게 했으며 자유와 자립성을 떨어뜨렸고 경제적 정체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윌과 현대 보수주의가 직면한 딜레마는 20세기 들어 진보주의가 힘을 얻으면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생산적이며 역동적인 국가가 됐다는 사실이다. 사실 뉴딜 이후인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미국의 경이로운 번영기가 도래했다. 이어 ‘위대한 사회’가 선포되고 정보혁명이 찾아오면서 미국은 세계무대에서 지배적인 힘을 갖게 됐다.



2019년인 현재에도 미국이 지구 상에서 가장 자유롭고 역동적이며 혁신적인 국가로 남아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만약 이 모두가 진보정책들이 한 세기에 걸쳐 이룩해낸 성과라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진보주의가 아닐까. 현대 보수주의의 결점은 오늘날의 미국이 실패로 끝난 공화정인지 아니면 눈부신 성공 스토리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혼란이 보수주의자들 사이에 정치적 위기를 만들어냈고 바로 그것이 도널드 트럼프의 출현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1930년대 이후 지금까지 보수주의자들은 그들의 지지자들에게 진보적인 의제를 모조리 거둬들이겠다고 줄기차게 약속해왔다. 보수주의자들은 웰페어 스테이트(welfare state·복지국가)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 따르는 위험성을 누차 경고했고 이토록 중차대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보수적 지도자들을 강력히 비난했다.

하지만 레이건 혁명과 깅그리치 혁명 및 티파티 혁명에도 불구하고 웰페어 스테이트는 흔들리지 않은 채 여전히 굳건히 서 있다. 공화당은 미국 정치판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웰페어 스테이트는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이것을 공화당의 무능으로 보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보다 보수주의자들은 대중이 웰페어 국가를 진정으로 원한다는 사실과 오늘날의 현대 국가는 공상실험 같은 자유주의(libertarian) 체제 아래서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이로 인해 보수주의 진영의 지도자들은 배신감에 사로잡힌 지지자들을 고통 속에 방치했고 선거철마다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공약에 불신감을 갖도록 만들었다.

근년 들어 진보주의 열기가 고조되자 보수주의 유권자들은 ‘낚싯밥 바꿔치기’ 속임수를 쓰지 않은 후보들을 찾으려 혈안이 됐다. 그리고 이런 분노 속으로 걸어 들어온 인물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다. 그는 낡은 구 체제를 간단히 무너뜨렸고 엘리트층에 대한 반감에 편승해 결국 백악관에 입성했다.

조지 F 윌의 책은 흥미롭다. 그러나 그 책의 핵심에는 현대 보수주의를 불구로 만들고 미국의 정치를 망가뜨린 ‘잃어버린 이상향(lost utopia)’이라는 전설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윌은 자신을 “정감 있는 저전압(low-voltge) 무신론자”로 묘사한다. 그렇다면 그는 에덴의 동산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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