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확대될 경우 고순도 불화수소와 같은 소재뿐만 아니라 반도체 장비까지 타깃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모두 현재 신규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는 상황이라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한국 반도체 산업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22일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화이트리스트 삭제에 따른 반도체·디스플레이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계의 일본산 장비 의존도가 높아 향후 일본 정부의 타깃의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할 경우 타격 받는 전략 물자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품목은 반도체 소재인 웨이퍼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은 일본산 웨이퍼를 50% 이상 쓰고 있기 때문에 웨이퍼가 수출제한 품목에 들어갈 경우 곧바로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지난 4일 일본 정부가 3대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에 대해 수출규제 조치를 시작한 후부터 웨이퍼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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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반도체 장비 확보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현재 반도체 업체들은 일본의 도쿄일렉트론·캐논·니콘 등으로부터 노광·증착·식각·테스트용 등의 장비를 수입해 쓰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 업체들이 사용하는 전체 수입 반도체 장비 중 32.0%가 일본산이다. 이주완 연구위원은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20%에 불과하며 리소그래피를 독점하고 있는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일본 의존도가 46.9%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반도체용 습식각기, 세정 장비, 이송 장비 등은 일본산 의존도가 80~90%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현재 극자외선(EUV) 생산라인과 시안 2공장, 평택 1-2라인, SK하이닉스는 이천 M16과 용인 등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상황이라 이번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가 21일 일본 출장길에 오른 것도 반도체 소재에 이어 장비까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전방위적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 현지 공급망을 점검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디스플레이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디스플레이 장비는 전체 수입 장비 중 82.9%가 일본산이라 문제가 발생할 경우 대체가 쉽지 않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턴 형성, 건식각기 등은 100% 일본산에 의존하고 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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