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기술교육에 가장 최적화돼 있다는 점에서 특성화고등학교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무한한 가치의 터전입니다. 특성화고 선택이 미래 세대에 한계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꿈을 향한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교육부 1급 공무원에서 ‘교육의 정보통신기술(ICT)화’ 담당기관인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원장을 거쳐 지난봄 인천 특성화고 교장으로 ‘깜짝’ 변신한 한석수(60·사진) 재능고등학교 교장. 고위직 국가공무원으로 교육 핵심정책을 주무르고 준공공기관 기관장으로 두루 호평을 얻다 고교 교장으로 변신하며 세간의 화제를 모았지만 ‘달라진 게 뭐가 있겠냐’고 덤덤히 답하던 그의 미소는 전과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인터뷰 당일 이른 아침 교직원에게 보낸 문자가 기자에게 잘못 전송될 정도로 방학 중임을 무색하게 하는 ‘새벽 업무’ 습관 역시 그리 달라진 것은 없었다.
KERIS 재직을 마무리하고 지난 4월15일 인천 재능고로 첫 출근을 한 지 어느덧 100일. 그 사이 한 교장은 ‘교육’과 떼려야 뗄 수 없었던 그의 인생이 차세대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자로서의 준비 행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기주도학습’과 ‘인성’을 이야기하는 학교 철학에 끌리고, 교육부 시절 주로 담당했던 고등교육(대학)과 다소 낯선 중등교육(중고교)을 연계해 보고자 부임을 결심했지만 미래 ICT 교육 인프라 구축에 주력했던 KERIS 시절 등을 더할 때 ‘어제와 오늘은 결국 내일을 위한 준비과정’이라 느껴진다는 게 그의 귀띔이다. 한 교장은 “부임해보니 잠재력이 우수하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진학 대신 조기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많았다”며 “학교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성장했던 사람으로서 앞으로는 학생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미래를 디자인해 나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통 행정가 출신 교육자이지만 시집을 두 권이나 낸 시인이기도 하다.
충남 공주가 고향인 그는 자신을 ‘흙수저’라고 소개한다. 어린 시절 부친이 뇌출혈로 쓰러지며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남들 다 가는 초등학교도 한 해 늦게 진학했다. 어려워진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과 고교 진학 모두 은사들의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 사범대를 졸업해 학교 선생님이 되라던 모친의 바람과는 달리 ‘상경’을 선택한 것도 ‘더 큰 꿈을 꾸라’던 고교 시절 은사의 조언 때문이었다.
1985년 행정고시 29회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교육 주무부처에서 혁신인사기획관, 충남교육청 부교육감, 교육과학기술연수원장, 정책조정기획관, 교육정보통계국장, 대학정책실장 등을 역임했고 이후 KERIS 제9대 원장으로 부임해 올 초 3년 임기를 마무리했다.
30년 공직생활의 자취는 우리 일상과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는 사무관 시절에는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국민학교의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는 실무를 담당했다. 300세대 이상 공동주택을 건설할 때 학교 부지를 반드시 마련해야 하는 ‘학교 용지 확보 등에 관한 특례법’도 실무자인 그의 손과 발을 거쳐 나왔다. 대학정책실장 시절에는 대학구조개혁 추진 등을 총괄했고 국립학교 회계법, 대학도서관 진흥법 등도 마련했다.
공직생활을 교육 정보화 부서에서 시작했을 만큼 교육·학술 분야의 정보화를 담당하는 KERIS 시절도 그의 ‘텃밭’ 중 하나였다. KERIS의 주요 사업인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나이스(NEIS)’는 그가 2000년대 초 교육정보통계국장으로 일할 당시 개통을 담당했던 분야다. 올 초 ‘사립유치원 파문’ 당시 화제를 모은 차세대 교육 국가관리회계시스템 ‘에듀파인’ 역시 KERIS 수장인 그의 진두지휘 아래 나온 결과물이다. 그가 재직할 당시 KERIS는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A 등급을 획득하고 세계은행 조사에서 교육 분야 역할모델로 선정되며 각국 교육부 인사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 부상하는 등 대내외적인 호평을 두루 얻었다.
그의 다음 선택인 재능고는 1954년 설립된 인천의 명문 사학이자 전국 최초의 ‘스마트시티’ 산업 분야 특성화고교다. 5개 학과, 750명 규모로 인천 지역 30여개 특성화고교 중 선호도가 가장 높아 지난 신입생 선발에서도 200여명이 고배를 마시는 기록을 세웠다. 취업률도 56.8% 수준으로 지역 평균과 20%포인트에 달하는 차이를 보여 학부모들의 선호도도 상당하다. 재능고 스마트반도체학과는 수도권 학교 중 유일하게 ‘반도체 분야 도제학교’로 지정돼 병역특례와 연결되는 산학연계 맞춤형 실무 취업반을 운영하고 있다.
KERIS 시절 국제미래학회·국회 등과 ‘대한민국미래교육보고서’ 발간을 주도했던 그는 현재 학교 내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4차 산업혁명 도래와 학령인구 감속 속에서 특성화고의 기술교육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에 관한 미래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특성화고는 기술교육에 특화돼 관련 교육과정이 보다 자유롭기에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빅데이터, 로봇 등 시대변화에 가장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학교라는 것이다. 실제 최근 스마트통신과가 주축이 된 재능고 동아리 3개 팀은 ‘2019 국방과학기술제전’의 ‘밀리터리 페스티벌 DAPA 휴머노이드 로봇 경연대회’에 출전해 모두 5위권에 드는 기록을 세웠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교육은 특성화고의 텃밭”이라며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취업 실무형 기술교육에 나선다면 일반고에 진학해 별다른 경쟁력이 없어진 대학을 고집하기보다 특성화고를 찾는 학생들이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관료 출신인 한 교장은 정부의 장기적 정책 지원의 중요성 등도 잊지 않고 언급했다. 특성화고 자체가 아무리 우수하다 해도 기업 환경 개선 및 지원 등이 더해지는 정책적 네트워크야말로 학교 차별화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는 “졸업 뒤 군대에 가야 하는데다 고졸보다 전문지식을 갖춘 전문대 출신을 우선하기에 국내 대기업 중 고졸 기술인력을 반기는 곳은 거의 없다”며 “학생들이 고교와 전문대 과정을 연계한 교육을 받으며 현장 실무에 집중한다면 기업과 학생 모두 ‘윈윈’인 기술교육의 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그는 기업과 특성화고·전문대를 잇는 스마트반도체학과의 ‘취업보장형 고교-전문대 통합교육 육성사업(유니테크)’이 올해를 끝으로 종료되는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유니테크 사업은 고교 단계에서 학교 교육과 기업 현장교육을 병행하다 졸업 및 취업 뒤에는 주말에 전문대 과정을 병행 이수하도록 디자인돼 인기가 높았지만 기타 정부 사업들처럼 정책이 끝나도 지속성이 가능한지에 대한 확인 없이 종료된다.
인천 특성화고에 부임하면서 그는 결혼 뒤 처음으로 가족과 헤어져 학교에서 5분 거리의 오피스텔에 기숙하며 ‘두집살림’을 감수하고 있다. 그는 “학생 각자의 자발적인 참여 속에 학교와 교육에 변화가 일어나도록 특성화고라는 새로운 자리에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He is...
△1959년 충남 공주 △한양대 행정학과 △미국 아이오와대 교육학 박사 △행정고시 29회 △충남도 부교육감 △교육부 대학정책실장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원장 △재능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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