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단기 공약 사업을 사회보험기금으로 충당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사회보험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법에 따라 미래 보험금 지출과 위기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여유자금을 쌓는다는 취지는 뒷전이 된 채 정부의 쌈짓돈처럼 헐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국회예산정책처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고용보험기금은 지난해 총지출이 수입을 넘어서면서 8,082억원의 재정수지 적자를 봤다. 그 가운데 실업급여 계정은 2,750억원 적자가 난 데 이어 적립배율(지출 대비 적립금)도 전년 0.9배에서 0.7배로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지난 2013년 고용보험료율을 인상해 흑자 전환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올해는 정부의 구직급여 및 출산전후휴가·육아휴직급여 확대 등에 따라 적자 규모가 지난해의 5배 가까운 1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부랴부랴 추가경정예산(3,214억원)을 편성했지만 지출이 워낙 커 적립배율 추가 하락은 불가피하다. 고용보험기금은 대량 실업에 대비해 법에 따라 해당연도 지출액의 1.5~2.0배(적립배율)를 여유자금으로 쌓아둬야 하지만 현실은 이를 한참 밑돌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출산전후휴가·육아휴직급여가 2002년 기금사업에 포함될 때부터 고용보험 목적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아 제도 변경을 전제로 도입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유야무야됐다. 정부는 오히려 지난해 신설한 배우자 출산휴가급여도 고용보험 사업으로 편성했다. 정부의 청년 일자리 대표사업인 중소기업 청년추가고용장려금·청년내일채움공제도 재원 대부분이 고용보험기금에서 나간다.
오는 2057년 적립금 고갈 전망에도 개혁 논의가 중단된 국민연금기금은 법정 적립배율조차 없다. 지난해 민간 제도발전위원회가 ‘70년 후 적립배율 1배 유지’와 같은 재정목표 수립을 권고했지만 정부안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독일(적립배율 0.2~1.5배), 일본(1배), 스웨덴(수지균형) 등 연금 선진국이 이미 재정목표를 법에 정해둔 것과 상반된다. 중장기적으로 지켜야 할 재정 건전성의 지표가 없다 보니 정부가 보험료율 인상처럼 미래 부담을 줄이는 결정은 미루는 일이 반복되는 실정이다. 건강보험기금도 보장성 강화(문재인 케어) 정책 시행 이후 지난해 8년 만에 적자 전환해 2026년이면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지만 정부는 ‘문제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기금이 정부 쌈짓돈처럼 쓰이는 일이 반복되면서 가장 큰 문제는 미래 보험금 지출을 위한 재원이 바닥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고용보험기금 적자 전환 시점도 불과 3년 전 전망한 2020년보다 2년 빨라진 상태다. 예정처 관계자는 “(고용창출장려금과 같은) 일반사업은 기금 목적상 차순위라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며 “앞으로도 구조적으로 적자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건전성을 신경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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