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오는 4·4분기부터 웨어러블 로봇을 시작으로 로봇제품 상용화에 나선다고 현대차 관계자가 25일 서울경제신문에 밝혔다. 현재 연구개발 중인 로봇공학은 3개 분야인데 각각 입는 로봇(웨어러블 로봇), 서비스 로봇, 개인용 소형이동수단(마이크로 모빌리티)이다. 해당 분야에서 모두 8종류의 로봇들이 시험 중이며 이 중 하반신에 입는 ‘첵스(CEX)’부터 연내 상용화된다. 서울경제신문은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현대차 로보틱스팀의 연구소를 방문해 8종 세트를 취재했다. 총 2편에 걸쳐 보도하는데 그중 ‘웨어러블 로봇 4총사’를 먼저 소개한다.
지난해부터 각각 미국 앨라배마주·조지아주에 있는 현대차와 기아차 북미공장의 생산직 근로자들은 처음 보는 로봇을 입게 됐다. 간편하게 입으면 마치 네발 달린 의자가 된 것처럼 하체의 근력 부담을 덜어주는 하지보조 착용로봇 첵스다. 허리 아래 부분을 곤충의 외골격처럼 감싸주는 형태인데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 자동차 생산현장에서 일하더라도 허리·무릎·골반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설계됐다. 실제로 현대차가 수개월간 시범 도입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하루에도 최장 8시간씩 공장 생산라인에 반쯤 쭈그린 자세로 자동차 부품을 조립해야 했던 근로자들은 근골격계 통증과 피로에 시달렸는데 첵스를 입은 후 육체 피로와 부상 위험을 현저히 덜어낼 수 있었다.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도 데이터로 확보했다고 한다.
첵스는 최근 현대차 국내 공장에도 시범 도입돼 실용성·경제성 등을 가늠하는 절차인 개념증명(proof of concept) 과정을 진행했다. 현동진 현대차 로보틱스팀장은 “첵스는 연내에 양산을 통해 상용화한다”며 “먼저 올해에는 북미공장에서부터 본격 도입되며 내년부터는 국내 공장에도 적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양산 제품은 먼저 현대차 내부 수요 물량부터 채운 뒤 다른 자동차 회사를 비롯한 외부 고객들을 대상으로 시판된다.
현대차가 로보틱스팀을 통해 첵스 등의 상용화 준비를 본격화한 것은 2017년 무렵부터였다. 앞서 일본 도요타, 미국 포드사가 상반신 착용 로봇을 자사 공장에 도입하기는 했으나 자체 개발품이 아니라 미국의 웨어러블 전문기업 레비테이트테크놀로지스(LT) 제품 등을 사다 쓴 것이었다. 현대차는 그 정도는 충분히 직접 개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미 웨어러블 로봇 개발을 수년간 연구해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대차는 일반 로봇전문기업과 달리 테스트베드 역할을 해줄 대규모 자동차 생산공장을 국내외에 두고 있으니 연구개발 중간중간 생산현장에 시범 적용해 근로자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갖고 있어 유리했다. 자체 연구진과 생산현장 관계자 등이 소통하며 시제품을 개발해 북미공장에 적용해보니 근로자들의 평가가 좋았다. 현 팀장은 “저희 생산근로자들에게 경쟁사 웨어러블 로봇과 저희 제품을 써보게 했는데, 어느 것이 우리 회사 제품인지 모르도록 블라인드테스트 방식으로 진행했다”며 “그 결과 우리 제품에 대한 사용자들의 만족도가 월등했고, 생산성 개선 효과도 더 좋다는 평가를 들어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첵스의 장점은 경량이며 활동성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또한 별도의 전원·연료가 필요 없이 작동하는 ‘에너지 저장·발산형 패시브방식’이어서 충전 등을 하지 않고 장시간 쓸 수 있다. 자체 하중은 1.5㎏대에 불과하다. 실제로 기자가 실물을 접해보니 약간 두꺼운 책 한 권 정도의 무게밖에 나가지 않았다. 엉덩이에서부터 무릎관절·종아리까지 외골격이 꽉 잡아주면서도 관절의 가동이 매우 부드러워 골반과 무릎을 굽혔다 폈다 반복하며 일할 때 편할 것 같았다. 기자의 체중은 미들급 정도인데 로봇이 워낙 경량이다 보니 혹시나 뒤로 주저앉으면 로봇의 받침 다리가 충격을 버티지 못해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알고 보니 1.5㎏에 불과한 이 웨어러블은 로봇의 발 하나당 150㎏ 정도씩의 하중도 문제없이 받쳐준다고 한다.
기업과 생산직 근로자들이 웨어러블을 착용해야 하는지 고민할 때 가장 크게 고려하는 요소 중 하나가 탈착 시간과 가격이다. 보통 생산 현장에서 약 45~50분간 일하고 10~15분 쉬는 단위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입고 벗는 것이 복잡해 5분·10분씩 걸린다면 생산성이 저하되고, 휴식 시간도 그만큼 빼앗겨 착용하기를 꺼릴 수밖에 없다. 첵스는 탈착이 간편하게 이뤄져 20초 정도면 충분히 입거나 벗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체를 지지해주는 기존의 주요 외산 웨어러블 제품이 약 3,000달러 안팎의 가격에 시판 중인 데 비해 첵스는 경쟁사 대비 절반 수준으로 전망돼 높은 가성비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의 웨어러블 로봇 4총사 중에는 ‘첵스’ 외에도 허리보조 로봇 ‘웩스(WEX)’, 하지마비 환자용 의료로봇 ‘멕스(MEX)’, 상체와 팔을 보조해주는 로봇 벡스(VEX)도 포함돼 있다. 이 중 웩스는 주로 서서 무거운 짐 등을 들어 올려 옮기는 근로자를 위해 이르면 내년부터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팔·허리의 통증·부상 등을 비롯한 근골격계장애(WMDS)를 겪는 미국인 근로자는 연간 약 1억3,000만명(건강보험 적용 기준)에 달한다. WMDS로 인한 미국 사회의 경제적 비용(산재 보상, 임금 손실, 생산성 손실)은 한 해 450억~540억달러에 달한다는 미국 의학연구소의 보고서도 2000년대 초에 나왔다. 2007년 기준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근로자 중 근육통증이 보고된 사례는 23%에 달했다는 ‘하중을 줄입시다(Lighten the load)’ 보고서가 유럽산업안전보건청 등을 통해 작성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WMDS에 대한 공식 통계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제조 및 건설·물류현장 등에서 상당한 근로자들이 관련 질환을 겪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현대차가 자사 생산공장에서 품질과 실용성을 검증한 근로자용 웨어러블 로봇들을 단계적으로 상용화한다면 국내외 근로자들의 보건과 사회적 경제비용 절감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의왕=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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