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격화하자 아시아 증시가 26일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중국 위안화는 홍콩 역외시장에서 사상 최저치로 추락했다. 반면 안전자산인 엔화는 일본은행(BOJ)이 지지선으로 여기는 달러당 105엔이 장 초반에 깨질 만큼 강세를 나타냈다. 극심한 금융시장 불안으로 ‘금 본위제’ 복귀까지 거론되는 와중에 금 가격은 온스당 1,500달러 중반대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적’이라고 규정한 데 이어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위해 국가 비상사태 선포까지 위협하자 맨 먼저 개장한 서울과 도쿄 증시에 이어 상하이·홍콩 증시는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미국과의 무역협상이 사실상 타결됐다는 소식을 안고 출발한 일본 닛케이지수는 개장 초부터 2%대로 급락했다. 무역전쟁에서 미국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이 적지 않은 양보를 했다는 소식이 증시 불안을 가중시켜 닛케이지수는 449.87포인트(2.17%) 떨어진 2만261.04에 장을 마감했다.
무역전쟁의 파장에 더해 그칠 줄 모르는 반(反)중 시위까지 겹친 홍콩 증시는 이날 장중 3% 넘게 급락했다. 중국 상하이지수도 이날 1.60% 이상 하락하고 선전지수 역시 2% 가까이 급락 출발했다. 다만 미국과 무역협상을 이끄는 류허 부총리가 구두 개입에 나서 하락 폭은 오후장 들어 일부 줄었다. 미국 뉴욕 증시의 선물시장도 다우지수와 나스닥 모두 2% 넘게 하락해 26일 정규장에서 약세를 예고했다. 다만 오후 들어 미중 양국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시장의 낙폭은 둔화했다.
글로벌 경기하강 우려 속에 지난 2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큰 폭으로 내린 10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원유(WTI)와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10월물 브렌트유 가격도 약보합세를 이어갔다.
이날 위험자산인 주식에 ‘팔자’ 주문이 집중되자 안전자산인 엔화와 금값은 급등했다. 블룸버그는 이날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가 달러당 104.45엔까지 상승해 2016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와 BOJ가 내수 경기와 수출의 지지대로 보는 달러당 105엔이 깨진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커져 105엔대를 회복했지만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위험 회피와 미 금리 하락으로 달러 매도가 겹치고 있어 엔화 가치는 일시적으로 103엔대에 진입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온스당 1,500달러를 돌파한 금값도 수요에 날개가 달리면서 고공행진을 지속했다. 블룸버그는 이날 금 현물시세가 온스당 1,544달러에 이르며 23일보다 1.1% 올랐다고 전했다. 금값은 이날 중국에서 ‘금 본위제’ 복귀까지 거론돼 한층 상승세를 탈 것으로 전망된다. 중 관영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기축 통화국인 미국이 국제금융을 위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오히려 세계 금융질서를 교란하고 있다며 금 본위제로의 복귀를 준비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을 전했다.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금 본위제’를 중국이 들고 나온 것은 급락세를 면치 못하는 위안화 위상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무역전쟁과 홍콩 시위 사태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위안화 가치는 이날 역외시장에서 한때 달러당 7.19위안까지 하락했는데 이는 홍콩 역외시장이 개설된 2010년 이후 최저치다. 위안화는 중국에서도 달러당 7.15위안까지 떨어져 2008년 2월 이후 11년여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손철기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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