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 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 니, 오늘 외박하냐?
- 아뇨, 올은 집에서 잘 건데요.
-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
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
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길에 마주친 아배는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 야야, 어디 가노?
- 예… 바람 좀 쐬려고요.
- 왜, 집에는 바람이 안 불다?
그런 아배도 오래전에 집을 나서 저기 가신 뒤로는 감감무소식이다.
가만, 밥상머리에서 발고랑내를 풀풀 풍기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툭 던지는 질문은 예사롭지 않다. 혈기왕성한 아들이 대꾸도 못하고 잠자코 아욱국에 밥 말아 먹는 모습이 눈에 선하지 않은가. 콧바람 든 아들 앞에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세우고 툭 던지는 질문도 고수의 풍모가 엿보이지 않는가. 실망감을 포장한 당위의 불호령 한 마디 없이 두 마디 문답법으로 ‘나 자신을 알자!’ 돌아보게 하니, 저이는 동양의 소크라테스가 아닌가. 저기 가신 뒤로 감감무소식인데도 거듭 가르침을 생각토록 하니 아배의 모습으로 온 참스승이 아닌가.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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