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두 달여 만에 일본을 방문해 현지 법인 방문 및 글로벌 정·재계 인사들과의 회동 일정을 소화하는 등 흔들림 없는 경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넉 달 전 대비 0.3%포인트 낮추고 한일갈등 국면 지속으로 경제 침체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이 부회장의 ‘경제 외교관’ 행보가 돋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일본 재계의 초청으로 도쿄에서 ‘2019 일본 럭비 월드컵’ 개막식 및 개막전을 관람했다. 이날 행사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비롯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등 각국 정상이 참석했다. 이 부회장은 세계 정상 및 국제올림픽기구(IOC) 위원들과 함께 ‘스카이박스’에서 경기를 관람하며 중간중간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특히 이 부회장은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도 아베 총리와 인사를 나누며 경제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후문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행사에 앞서 삼성전자 일본법인 경영진으로부터 현지 사업 현황을 보고 받고 중장기 사업 방향을 논의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7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직후 반도체 소재를 확보하기 위해 일본 현지를 방문, 고순도 불화수소 재고를 확보하는 등 발 빠른 대응을 보였다.
이 부회장은 올 들어 글로벌 정상들을 한 달에 한 번 꼴로 만나는 등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올 2월에는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부다비 왕세제와 면담했으며 같은 달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도 만났다. 5월에는 조지 W 부시 전(前) 미국대통령과 면담했고 6월에 방한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는 삼성그룹의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회동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일본럭비 월드컵 참석을 위해 전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귀국하자마자 일본행 비행기에 바로 몸을 싣는 등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이번 럭비 경기를 보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강조한 경영 혁신 기조를 되새겼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 회장은 1993년 경영혁신을 강조한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야구·럭비·골프를 삼성의 3대 스포츠로 정했으며 이 중 럭비에서 투지와 추진력을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다음주 한일경제인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되는 등 한일 간 갈등 속에서도 경제협력은 계속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기업들 사이에서는 형성돼 있다”며 “이 부회장의 이번 방일을 통해 양국 간 경제 협력이 정상화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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