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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도의 18년 전 '알라딘 분장'에 전 세계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는?

과거 유색인종 분장으로 여론 뭇매

트뤼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기억 안나"

백인이 짙은 분장으로 흑인 흉내내는 '블랙페이스'

과거 민스트럴 쇼를 시작으로 유행해

이후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굳어져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19일(현지시간) 매니토바주 위니펙에서 기자들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위니펙=AP연합뉴스




“짙은 피부 분장, 얼마나 많이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총선을 약 한 달여 앞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를 둘러싼 인종차별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아랍인처럼 얼굴을 짙은 색으로 칠한 과거 사진이 공개된 데 이어 다음날인 19일 흑인처럼 분장한 영상까지 나오면서다. 이에 트뤼도 총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이 검은 피부색으로 분장했는지 기억할 수 없다고 말해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쥐스탱 트뤼도(오른쪽 두번째)캐나다 총리의 과거 ‘유색인종 분장’ 사진을 공개한 미국 타임지 /타임 트위터 캡처


발단은 18년 전 그가 정계 입문 전 교사로 일하던 시절 사진이 공개되면서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당시 29살이던 트뤼도 총리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사립학교인 웨스트포인트그레이 아카데미 교사로 재직하던 중 ‘아라비안나이트’를 주제로 열린 연례 행사에서 알라딘으로 분장한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속 트뤼도 총리는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얼굴과 목, 손을 짙은 갈색으로 칠한 모습이었다.

트뤼도 총리는 사진 속 인물이 본인이라는 점을 시인하며 즉각 사과했지만 하루도 채 지나기 전, 이번에는 흑인처럼 분장한 영상까지 나왔다. 캐나다 매체 글로벌뉴스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그는 1993~1994년 무렵 얼굴을 검은색으로 칠하고 곱슬머리 가발을 썼다. 영상에서 트뤼도 총리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야권에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엘리자베스 메이 녹색당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트뤼도는 정부의 모든 레벨에서 사회정의 리더십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이해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시크교도로 터번을 쓰고 다니는 저그미트 싱 신민주당 대표도 트뤼도 총리의 과거 사진을 가리켜 “모욕적”이라며 “대답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공격했다. 평소 트뤼도 총리가 보여준 다양성에 대한 포용 정신을 지지했던 국민들 역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토마스 다트머스 라이스가 부른 ‘점프 짐 크로’




20년 가까이 된 오랜 사진이 이처럼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하는 이유는 트뤼도 총리가 한 유색 인종 분장이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트뤼도 총리처럼 흑인이 아닌 사람이 흑인 흉내를 내기 위해 얼굴을 검게 칠하고 분장하는 것을 ‘블랙페이스’라고 한다. 분장용 화장품이나 구두약 등으로 얼굴을 칠하고 입술을 두껍게 과장해 그리는 식이다.

블랙페이스 분장은 1830년대부터 20세기 전반까지 미국에서 유행했다. 당시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민스트럴 쇼’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블랙페이스 분장은 백인 연기자가 얼굴을 새까맣게 칠하고 과장된 춤과 노래로 흑인을 희화화할 때 사용됐다. 1828년 토머스 다트머스라는 코미디언이 블랙페이스를 하고 부른 노래 ‘점프 짐 크로’의 짐 크로가 바로 민스트럴 쇼의 단골 캐릭터다. 짐 크로는 엉덩이를 쏙 빼고 한쪽 다리를 절룩이는 동작으로 유색 인종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해 웃음을 유발했다.

랠프 노덤 미국 버지니아 주지사 /블룸버그


이후 남북전쟁(1861~1865년) 당시 공공시설에서 백인과 유색 인종을 분리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이 ‘짐 크로법’이라고 불리며 짐 크로는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굳어졌다. 당시 짐 크로법에 따라 흑인들은 식당·대중교통·화장실 등 공공시설에서 백인과 분리돼야 했다. 80년 넘게 시행되던 이 법은 1964년 인종· 민족 · 국가 · 여성의 차별을 금지한 연방 민권법이 제정되고 다음 해 투표권법도 제정되며 폐지됐다. 블랙페이스 분장은 이러한 역사를 거쳐 흑인을 희화화하고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행위로 여겨지게 됐다. 광고 모델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분장을 한 이탈리아 항공사 알리탈리아, 35년 전 졸업 앨범 촬영 때 흑인 분장을 한 랠프 노덤 미국 버지니아 주지사, 블랙페이스 컨셉을 차용한 스웨터를 출시한 구찌 등이 인종차별 논란을 피해가지 못한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이번 파문으로 다음 달 21일 총선에서 트뤼도 총리가 받을 타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가 소수자를 위한 정책과 진보 이미지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온 만큼 이번 인종차별 논란의 여파가 클 수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는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국 유색인종 하원의원들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내자 “다양성은 우리의 가장 위대한 힘인 동시에 캐나다인의 자부심”이라며 우회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랬던 트뤼도 총리가 직접 인종차별의 상징인 짙은 색 피부 분장을 한 사실은 전 세계인들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연초에 터진 대형 건설사 스캔들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은 상황에서 인종차별 논란까지 불거지며 트뤼도 총리의 재선 가도에는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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