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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벌규정 2,200여개..."툭하면 수갑 차는데 누가 기업하겠나"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업인]

경제법령내 형사처벌 항목 20년전보다 42% 증가

성차별 등 통제 어려운 직원 범죄까지 대표 책임

"美보다도 잣대 엄격" 외국 기업인마저 절레절레





# 지난 2013년 1월 삼성전자(005930) 화성사업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하자 검찰은 유독물 관리자 외에 당시 사용주로 삼성전자 인프라기술센터장이던 이모(56)씨와 삼성전자 법인을 함께 기소했다. 범죄 행위자와 법인·사용주를 함께 처벌하는 ‘양벌규정’ 때문이다. 법원은 “이씨가 구체적·직접적 주의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고 위법행위의 행위자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삼성전자와 함께 무죄를 선고했다.

# 보일러 제조업체 A사의 직원 C씨는 프레스 작업을 하다 부주의로 기계에 말려들어 사망했다. 직원의 부주의가 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법원은 A사의 대표이사 B씨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환경측정 의무 및 방호조치 의무를 위반했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기업인들이 교도소 담벼락 위를 걷고 있다. 경영판단과 무관한 불법행위에도 최고경영자(CEO)라는 이유만으로 형사 책임을 져야 한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3년째 이어지고 있는 기업 수사와 재판으로 기업들이 긴장하는 상황에서 CEO들은 ‘법률 리스크’에 몸을 사려야 하는 판이다. 기업인들에 대한 형사 처벌 강화는 결국 기업 경영은 물론 신규 투자에 상당한 부담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83%가 양벌규정

13일 한국경제연구원이 경제법령 처벌항목 2,657개를 조사한 결과 종업원이 위법행위를 했을 때 해당 종업원뿐 아니라 법인과 사용주까지 함께 처벌할 수 있는 국내 경제법령 처벌항목은 2,205개에 달한다. 전체 처벌항목 중 양벌규정이 83%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경우 대표이사가 함께 처벌 대상이 되는 셈이다. 한경연은 “실제 법원의 유무죄 판결과 관계없이 법령이 기업인들을 ‘과잉범죄화’함으로써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경영진이 현실적으로 파악하거나 통제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근로기준법 제110조는 종업원의 연장근로나 임산부 보호 위반이 있었을 때 사용자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상황에서 대표이사가 매일 종업원의 연장근로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움에도 최악의 경우 인신 구속될 수 있다.

산업안전을 강화하는 것은 백번 당연하지만 처벌에만 중점을 둔 법률은 기업의 생산과 투자를 위축시킨다. CEO들이 가장 준수하기 어려운 법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을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중 무역분쟁이나 일본 수출규제 등으로 이미 경영환경이 최악인데도 국내 규제는 늘어나는 분위기”라며 “산안법의 경우 문제가 생겼을 때 CEO를 고발하거나 CEO가 책임지도록 하는 경우가 많아 생산 라인 운영 자체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외국인CEO 바짝 긴장

국내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외국 기업인들도 가장 큰 어려움으로 CEO 처벌 규정을 꼽았다.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언급하며 “미국의 비슷한 법은 담당자만을 처벌하는 반면 한국은 CEO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최대 징역 3년, 3,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너무 큰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 규모가 클수록 CEO가 처벌받을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한국에서 영업해야 하는 미국 기업인들의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한경연에 따르면 이러한 경제인 처벌 규정은 1999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 2019년 10월 기준 경제 관련 법령 내 형사 처벌 항목은 총 2,657개로 법률당 평균 9.32개다. 20년 전 총 형사 처벌 항목 1,868개, 법률당 평균 6.55개에 비해 약 42% 증가한 셈이다. 형벌 유형별로는 인신구속과 직결되는 ‘징역 또는 벌금’이 1,507개에서 2,288개로 가장 많이(52%) 늘었고 ‘징역’도 74개에서 86개로 16% 증가했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벌금’ 형벌은 20년 전보다 오히려 7% 줄었다.

형벌 항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징역 또는 벌금’의 처벌 강도도 강화됐다. 20년 전에는 평균 징역 기간이 2.77년, 평균 벌금이 3,524만원이었지만 현재는 평균 징역 기간 3년, 평균 벌금 5,230만원으로 늘었다. 유환익 한경연 혁신성장실장은 “우리 기업과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형벌 규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늘어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기소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형벌 규정의 종합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취업 막는 규정 위헌

지나치게 강한 처벌 규정과 함께 재취업을 막고 있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이 기업인 과잉 처벌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8일 시행된 이번 시행령은 형 집행이 이미 종료된 기업인이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 복귀하는 것을 금지해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기존 시행령에서는 배임 횡령 등으로 취득한 이득액이 5억원 이상으로 유죄가 확정된 기업인은 범죄행위로 재산상 이득을 얻는 제3자 관련 기업체에 대해서만 취업이 제한돼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니던 회사에도 일정 기간 복귀할 수 없게 됐다. 집행유예는 2년, 실형은 5년 동안 재직이 금지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경영적 판단의 실패까지 배임 횡령으로 구속되고 재취업도 안 되는데 누가 투자를 결정하고 혁신을 하겠느냐”고 말했다./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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